이집트 테러 전문가 아마드 교수의 조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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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와 거래가 몸에 밴 중동 부족의 관행을 이해하지 못하면 제대로 된 협상을 하기 어렵다."

이집트 국립 사회.범죄학 연구소의 리파트 아마드(51.사진)교수가 한국인 인질 협상과 관련해 던지는 충고다. 이슬람의 지하드(성전.聖戰)를 전공한 테러 전문가인 그에게서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는 인질 협상에 대해 조언을 들었다. 그는 "서둘지 말고 차분히 협상을 이끌되 거래에서는 인색하지 말라"고 귀띔했다. 동시에 "부족 원로 회의인 슈라를 최대한 활용하라"는 충고도 덧붙였다. 다음은 일문일답.

-협상이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은데.

"당연하다. 23명이나 되는 인질을 붙잡고 있는 무장세력으로선 특별히 서두를 이유가 없다. 그러나 일단 납치 당시와 이후 며칠 사이에 인질을 해치지 않은 것을 보면 거래를 하겠다는 의도가 강해 보인다. 한국도 차근차근 풀어나가야 한다. 서두르는 모습을 보이면 요구사항이 더 많아 질 수밖에 없다."

-한국군 즉각 철수, 인질.동료 수감자 맞교환, 몸값 등으로 납치단체의 요구가 계속 바뀌는데.

"협상의 한 방법이다. 일단 원하는 것을 이것저것 던져본 뒤 모두를 챙기거나 일부를 취하는 것이 중동 상거래의 기본이다."

-납치세력의 정체에 대해서 논란이 있다.

"납치단체는 이슬람 원리주의를 신봉하는 과격 탈레반 반군은 아닌 것 같다. 그랬다면 한국군의 즉각 철수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을 것이다. 인질들과 맞교환 할 수감자 명단 작성에 시간이 걸리고 돈 얘기까지 나오는 것을 보면 가즈니주의 한 부족에 속한 군벌일 가능성이 크다. 중동권에서는 부족들이 서로 약탈하고, 지나가는 대상(隊商)을 공격하는 것이 흔한 일이다."

-현재 부족 원로들도 협상 채널로 활용하고 있는데.

"납치세력이 지역 군벌이라면 부족 원로들이나 이들이 모인 의결기구인 슈라가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부족 원로들은 단순히 중재역할이 아니라 납치 세력에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그러나 미리 염두에 둘 사항이 있다. 부족 원로들도 협상 과정에서 적지 않은 돈을 요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중동에선 친구나 친척끼리 사람이나 장사거리를 소개해 주고도 중개료를 챙기는 것이 관례다."

-인질을 잡고 거래를 하는 것이 한국이나 서방에서 보기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데.

"중동을 몰라서 하는 얘기다. 이 지역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동서무역의 중개 역할을 해오며 상술이 몸에 뱄다. 돈이 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슬람 창시자 마호메트와 첫 부인도 상인이었다. 종교개혁이 있기 전까지 기독교 세계에서는 장사가 터부시됐지만 이슬람 지역은 달랐다. 장사는 예술이고 최고의 직업이었다. 코란에도 '벌 수 있는 만큼 벌어라'라는 구절이 있다. 지금도 무역업이 일반인에게 최고의 선망 대상이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 슈라(Shura)=자문.협의.위원회를 뜻하는 아랍어다. 중동 지역 부족들이 지도자 선출이나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원로 회의를 일컫는다. 만장일치를 원칙으로 하며 그 결과에 모든 부족원이 복종한다. 고대부터 존재해 왔으며, 이슬람교를 받아들인 뒤에도 계속 유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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