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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송편지에 일일이 사유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보내주신 서신 잘 받아보았습니다.…이 나라의 민주화를 완전히 실현하는 것만이…감사합니다.』
집배원 최기식씨 (50·강릉 우체국)는 87년 10월 초순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였던 기영삼 현대통령으로부터 뜻밖의 친필편지를 받았다. 이유를 몰라 한동안 어리둥절했던 최씨는 곰곰이 생각한 끝에 수일전 「수취인 불명」으로 반송했던 한 편지의 발신자로「김영삼」이라는 이름 석자를 기억해 냈다.
최씨는 이즈음 막「주소지 불명」「수취인 주소이전」등의 우편물에 대해 일일이 사유를 써 발신자에게 되돌려 보내는 일을 시작하고 있었다. 당시 김총재는 강릉명주동의 한 수신자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수취인 불명이어서 최씨는「주소지에 그런 사람이 없다. 동사무소에도 알아봤으나 역시 그런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주소 대신 전화번호라도 안다면 연락해 달라. 그러면 반드시 배달해 보도록 하겠다」는 요지의 편지를 써 김총재에게 보낸 것이었다.
이처럼 신씨가 직접반송사유를 써 되돌려보내는 편지는 한달 25건 정도. 하루 1천여통의 우편물과 씨름하는 그에게 반송편지는 사실 무척 피곤한 존재나 배달 틈틈이 동사무소 등에 찾아가 이전 주소를 찾는다든지, 주변 사람들에게 전출입 여부를 확인하는 등의 작업은 과중한 우편물에 짓눌린 그의 어깨에 짐을 더 얹는 격이다 . 월 60여만원의 박봉에 편지 반송을 위해 자비로 구입하는 우표며 봉투 값 또한 그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이다.
최씨는 그러나 갖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7년째 이 같은 편지반송을 계속하고 있다. 이는 87년 가을 자신 앞으로 반송된 편지에 찍힌 「수취인 불명」이라는 뻘건 도장을 봤을 때의 불쾌감을 지금도 갖고 있다. 그래서 시작한 편지반송작업으로 그는 적잖은 펜팔을 갖게 됐다. 서울의 어느 형사, 원주의 70대 노인, 대구의 한 대학생과는 편지반송이 인연이 돼 지금도 전화나 편지를 서로 주고받고 있다.
집배직은 이제 대표적인 3D직종 중 하나다. 대략 아침7시∼오후7시까지 하루 12시간 근무, 토요일 종일 배달, 턱없이 낮은 보수 등 집배원은 그 어느 하나 매력이 없어 보이는 직업이다.
하지만 최씨는 78년 강릉우체국에 발을 들인 후 지금까지 「눈이 오나 비가 오나」외길을 계속 걷고 있다. 그는 편지를 배달하며 『주민들과 많은 교감을 나눌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와 함께『삶의 보람도 느낀다』고 덧붙였다.
딸 넷을 최씨 혼자 거두기가 벅차 그의 부인은 인근 김공장에 나가고 있다. <강릉 김창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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