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한·EU FTA 우리가 협력해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20일 유럽연합(EU)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2차 한·EU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종료됐다. EU 측은 FTA 협상에서 모두의 이득을 실현하기 위해 어떻게 협상에 임해야 하는가에 대한 본보기를 제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EU는 FTA 협상에서 허세가 없는 양허안을 제시했다. EU는 이를 통해 양자 간 신뢰를 구축하고 타결이 어려운 사안에 대한 합의의 돌파구를 마련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또 EU는 자신의 이해관계에 충실한 협상태도를 보였다. 이는 겉으로 드러난 입장과 상대방의 맞대응이 반복되면서 모두가 이득을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좋은 협상태도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EU는 지리적 표시, 예술품 거래이득에 대한 원작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추급권은 물론 저작권자와 음반 제작자에게도 보상을 제공토록 하는 공연보상청구권 등 자신의 독특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새로운 제안을 빠뜨리지 않았다. 자신의 이해관계 실현에 충실한 태도를 보인 것이다.

EU는 유연하고 합리적인 협상태도와 이를 통한 협력적인 분위기를 유지하려는 자세를 보였다. 자동차에 대한 관세의 신속한 철폐를 우리나라의 비관세장벽과 연계하겠다는 주장이 부당하다는 우리 측의 지적에 따라 이를 철회한 것이 한 예다. 이러한 유연성과 합리적인 협상태도는 협상의 타결에 중요한 요소다.

 이와 달리 우리 협상단은 대단히 보수적이며 경직된 협상태도를 보여 대조를 보였다. 이는 칠레 및 미국과의 FTA 협상에서 견지했던 입장을 반드시 관철하겠다는 식의 협상자세를 관성적으로 유지했기 때문이다. 경제학에서 ‘죄수의 딜레마’라는 현상이 있다. 이는 당사자 간 의사소통이 단절된 가운데 당사자들이 자신의 합리적인 계산하에 협력 대신 배반을 선택함으로써 모두에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현상이다. 여기에서 일방 당사자가 배반이라는 경쟁전략을 사용하고, 상대방이 협력전략을 사용하게 되면 배반을 선택한 측이 유리하게 된다. 그러나 상대방이 배반한다는 점을 알아차릴 수 있는 협상과 같은 상황에서는 양측이 경쟁적으로 배반을 선택함으로써 협상 분위기는 경직되고 결국 모두 손해를 보는 결과를 초래하기 쉽다.

 EU는 미국보다도 큰 시장이다. 제조업의 평균관세도 미국보다 높다. 우리와 같이 농산물 수입을 민감하게 여기는 공통점을 갖고 있으므로 무역자유화로 얻을 수 있는 잠재적 이득이 크며, 그 실현 또한 용이한 상대다. FTA 협상은 상대국에 특혜적으로 이익 극대화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므로 상호 이득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당사국 간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상대적으로 덜 개방하면 단기적으로는 이득을 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의 보수적이며 공격적인 협상태도가 협상 분위기를 경직시키고 협상의 타결을 어렵게 한다면 손실을 보는 당사자는 우리나라가 된다. 결과적으로 ‘소탐대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EU처럼 우리도 합리적이며 유연한 협상태도를 갖춰야 한다. 협상에서 당사자 간 신뢰의 형성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FTA와 같은 국가 간 협상에서는 이해관계를 조율하기 어려운 난제가 산적해 있을 때 신뢰가 없이는 아무것도 합의하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4월 끝난 미국과의 험난한 FTA 과정을 돌이켜보면 미국에 비해 EU는 독특하지만 협력적인 태도를 갖고 있는 좋은 파트너라고 생각된다. 당사자 간 신뢰는 협력적인 태도로부터 나오므로 우리나라도 이제는 우리의 이해관철에 충실하면서도 합리적이며 협력적인 협상태도를 보여야 할 때다. 협상은 상대방이 있는 만큼 상호주의에 입각한 협력적인 자세만이 협상에서 이득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이 되기 때문이다.

곽노성 동국대 교수·국제통상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