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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뇌 속을 손금 보듯 … 3. 남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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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남산에 있는 N서울타워. 이 주변이 내 초등생 시절 놀이터였다.[중앙포토]

밤마다 화려한 조명으로 남산을 밝히는 N서울타워(옛 남산타워)는 서울의 명물 중 하나다. 최근에 이 타워의 회전 전망대에 올라가 차를 한 잔 마실 기회가 있었다. 그 곳에 앉아 있자니 50여 년 전 일이 엊그제 일어난 것처럼 다가왔다.

 주변 사람들이 타워의 화려함에 찬사를 보내고 있는 동안, 나는 ‘과거로의 여행’을 떠났다. 타워 일대는 남산초등학교에 다니던 ‘개구쟁이 조장희’의 놀이터였다.

 내가 재동초등학교 3학년 때 우리 집이 서울 후암동으로 이사했기 때문에 남산초등학교로 전학했다. 당시 후암동에는 일본인이 살았던 적산가옥이 밀집해 있었다. 광복 후 일본인이 대거 빠져나가면서 팔려고 내놓은 적산가옥이 많았다. 아버지가 적산가옥을 한 채 샀던 것이다. 나는 후암동 집에서 남산을 넘어 남산초등학교까지 걸어 다녔다. 그땐 타워가 없었다. 그 일대가 미군 주둔지였다. 일제가 세운 신사인 조선신궁을 철거한 흔적도 곳곳에 남아 있었다. 조선신궁은 지금의 안중근 의사 기념관 인근 39만6000여 ㎡에 지워진 것으로 광복 직후 철거됐다.

  ‘딸딸이’를 타고 등하교 하는 게 가장 재미있었다. 딸딸이는 큰 판자 네 귀퉁이에 바퀴를 단 것으로, 요즘 청소년들이 길에서 타고 다니는 보드와 비슷했다. 내리막길에서 딸딸이의 앞 부분을 잡고 앉아 내려갈 때는 매우 신났다. 가끔 넘어져 무릎이나 손에 찰과상을 입기도 했다. 학교가 가까워오면 남산 입구 숲 속에 딸딸이를 숨겨 놓고 등교했다. 그땐 남산에서 학교까지 오는 길에는 거의 차가 다니지 않았다.

 어느 날 지금의 타워가 있는 부근으로 올라갔다. 미군이 버린 배터리가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그 중 꽤 무거운 90V짜리 커다란 배터리를 주어와 집 안 전등을 연결해 밝히곤 했다. 그러나 집에 있는 110V용 전구에 연결하면 흐릿한 불빛이 10여분 들어오다가 나가버렸다. 미군이 쓰고 버린 것이기 때문이었다. 북한이 남한 지역에 전기 공급을 끊어 제한 송전을 하던 때였다. 밤이면 서울은 칠흑처럼 어두웠다. 미군이 버린 배터리는 집 안 전등불을 켜는데 썼다기보다 내 호기심을 충족시켜준 장난감인 셈이었다.

 한 번은 미군 영내에서 일하는 한국인 ‘하우스보이’가 배터리를 줍기 위해 간 나와 친구들을 철조망 너머로 보고 물었다.

 ”야, 너희들 뭐 하러 왔니?”

 “배터리 주을라고요.”

 “다 쓴 것 가져가봐야 헛일이야.내가 새 것 줄 테니 몇 개 가져가라.”

 우리는 신이 났다. 새 것을 얻어와 집 안 전등에 연결하니 불빛이 제법 오래 갔다. 하우스보이는 그 뒤에도 종종 새 배터리를 구해줬다. 그 곳에 가 새 배터리를 얻어오는 게 내 일과 중 하나가 됐다. 나와 친구들은 새 배터리를 주는 하우스보이와의 만남을 중요한 비밀로 간직했다. 당시 그런 고성능 배터리를 쉽게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돈을 주고 사는 것도 아니고 공짜로 얻어 오는 게 아닌가.

조장희 <가천의대 뇌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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