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 부패」청산 최대과제/이 정치개혁안 통과됐지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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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연정 청산해 “정경유착 고리끊기”/상원선거 개선·국고보조금 폐지/수구세력 저항이 걸림돌
이탈리아는 18∼19일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상원의원의 비례대표제 폐지­소선거구제 채택 등 8개항의 정치개혁안을 압도적인 지지로 통과시킴으로써 지난 45년간 계속돼온 부패연정체제를 청산하는 전기를 마련했다.
이탈리아 정치권의 부정부패에 사정없이 메스를 가하고 있는 「사법부 혁명」으로 이미 빈사상태에 놓인 기존 정치권은 이번 국민투표로 최후의 일격을 맞은 셈이다.
줄리아노 아마토 현총리도 21일 새내각 구성을 위한 의회연설을 통해 사임의사를 거듭 밝히면서,변화와 개혁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부패로 얼룩진 「구정치와의 완벽한 결별」을 촉구했다.
이번 투표의 핵심은 ▲상원선거제도 개혁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금 폐지 등 두가지로 압축된다.
83%와 90%의 지지를 얻은 두 정치개혁안은 그동안 정치권을 특수계층으로 만들어 야합과 비효율 및 낭비를 유도,거대 부패구조를 이끌어온 소수정치엘리트에 대한 이탈리아 국민의 개혁요구를 극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이에따라 총3백15명의 상원의원중 4분의 3인 2백38명이 소선거구제로 선출되며 연간 8백20억리라(한화 4백10억원)의 정당지원금도 철폐된다.
제2차대전후 이탈리아 정치를 규정해온 「파르티토크라치아」(정당주의)와 「로티차치오네」(나눠먹기)란 용어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국회의원 선거제도 변경이 갖는 정치적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다.
입헌군주제 폐지와 함께 지난 1948년 출범한 이탈리아 제1공화정은 철저한 비례대표제를 바탕으로 하고있다. 파시스트정권 재출현 가능성을 원천봉쇄 한다는 것이 그 명분이었다.
그러나 비례대표제는 소수정당의 난립에 의한 극심한 정치불안을 야기,지난 45년간 모두 51차례나 내각이 바뀌는 혼란을 되풀이해왔다.
그 결과 공산당의 집권방지라는 명분 아래 보수우파 정당인 기민당을 중심으로 사회당 등 범중도 보수세력이 결집,반세기 가까이 사이좋게 나눠먹기식의 연립정권을 이끌어왔다.
연정 참여정당간 의석비율에 따라 총리를 포함한 각료는 물론이고 중앙정부 고위공직자·은행 등 국영기업간부·지방 행정관청 간부에 이르기까지 머리에서 발끝까지의 모든 자리가 각 정당에 골고루 배분됨으로써 거대한 부패구조를 유지해왔다.
45년간 국회의원으로 있으면서 일곱번이나 총리를 역임하고,36차례나 장관을 지낸뒤 지금은 마피아와의 유착혐의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기민당의 줄리오 안드레오티 종신 상원의원은 이탈리아 정치체제의 어제와 달라진 오늘을 상징처럼 대변하고 있다.
이번 국민투표로 혼란과 부패에 찌든 이탈리아 정치체제를 청산할 수 있는 제도적 발판은 마련됐으나 이탈리아 정치체제의 장래를 낙관하기엔 아직 이르다.
아마토총리를 이을 개혁주체가 뚜렷이 떠오르지 않고 있는데다 이번 투표에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하원 등 수구세력이 현행 제도변경 등 개혁물결에 저항할 것도 예상돼 아직도 수 많은 걸림돌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파리=배명복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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