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영병 총탄에 겹친 시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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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걷기도 불편한 아이가 눈마저 멀어버리면….』
19일 오후10시쯤 서울대병원 3층 신경외과 중환자실앞에서 무장 탈영병의 흉기난사로 중태에 빠진 아들 최정석씨(27·동숭미술관직원·서울성북구정릉3동)의 수술결과를 애타게 기다리던 어머니 이민자씨(50)는 더 이상 흘릴 눈물도 없는 듯 고개를 떨구었다.
최씨는 태어나면서부터 소아마비로 오른쪽 다리를 약간 절었으나 항상 명랑해 주위의 걱정을 덜어주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그를 반기지 않는 여러직장을 전전하던 최씨는 91년 3월 평소 좋아하던 조각이 가득 모여있는 동숭미술관으로 직장을 옮기며 미술관 관리업무를 열심히 해냈다. 이날 아침 평소와 마찬가지로 9시쯤 미술관으로 출근해 사무실과화랑을 정리한 최씨는 한 화가로부터 그림을 갖다달라는 부탁을 받고 서울 성북동에 있는 미술관 창고에서 그림을 가지고 돌아오던 중 오전11시50분쯤 서울 종로구 혜화동 과학고 앞길에서 김순애씨(37·여)를 인질로 경찰과 대치하던 무장탈영병 임채성일병(19)과 마주쳤다. 최씨는 피할 틈도 없이 임일병이 난사한 총에 복부관통상과 머리에 파편이 박히는 중상을 입은 채 서울대병원에 실려왔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최씨의 식구들과 미술관 동료들은 3층 중환자실앞에서 6시간에 걸친 대수술이 끝날 때까지 최씨의 생사를 모른채 초조하게 수술결과를 기다렸다. 『생명은 건졌지만 오른쪽 관자놀이에 박힌 파편 때문에 오른쪽눈은 실명할 것 같습니다/』
의사의 설명을 듣던 최씨의 아버지 최태환씨(57·회사원)는 예상된 결과라는 듯 고개를 떨군채 가족에게로 돌아왔고 이 말을 전해들은 어머니 이씨는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주변의 편견에 아랑곳없이 사회인으로서 자신의 몫을 훌륭히 해내 온 최씨가 졸지에 당한 슬픔은 최씨 혼자만의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기자의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신성은기자<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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