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4·29폭동 1년… 그후의 LA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로드니 킹 구타경찰관들에 대한 유죄평결로 제2의 폭동위기는 해소됐으나 이로써 50만 한인들의 삶터에 진정한 평화가 도래한 것은 결코 아니다. 한흑갈등은 언제든지 재연될 수 있는 휴화산처럼 외형만의 평온을 유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지난해 4월29일의 흑인폭동이 지나간지 1년. 그 후 한흑관계는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지, 그리고 수십년 쌓아올린 생활터전을 잿더미로 잃어버린 교민들은 얼마나 피해복구를 했는지 현지취재로 알아본다.
4·29 LA폭동 1주년을 앞두고 있는 한인교포사회는 제2의 폭동위기가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분위기가 매우 무겁다.
폭동이후 여건이 나아진 것이 별로 없는데다 당시의 상흔이 아직 곳곳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로스앤젤레스 한미봉사단체연합회가 최근 흑인폭동 피해자 1천5백3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75%가 폭동피해를 완전히 복구하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폭동피해업소중 영업을 재개한 업소는 27.8%에 불과, 한인들이 폭동악몽에 아직도 시달리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폭동피해자중 보험에 가입되어 있었던 경우는 45%에 그쳐 재기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이처럼 자력에 의한 피해복구가 어려운데다 적극적인 보상을 해줄 것으로 기대했던 미정부도 예상했던만큼의 지원을 해주지 않았다.

<법정소송 난관첩첩>
중소기업융자·연방재해지원금등은 한인들이 재기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으며 설사 충분한 융자를 해준다 해도 계속되는 불경기때문에 상환도 쉬운 일은 아니다.
이처럼 폭동후유증이 걷히지 않자 한인피해자 6백여명은 로스앤젤레스시와 경찰국을 상대로 한 보상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소송을 하느냐 마느냐에 대한 한인사회의 의견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소송을 시작하게 되면 그 기간만도 10년이상 걸릴 것으로 보이고 비용 또한 5백만달러(약40억원)나 들어가게 되는데 그나마도 승소에 대한 확신도 없다는 것이 반대하는 쪽의 설명이다.
그러나 한인들의 의지를 강력치 나타내고 후손들에게 명분을 남겨주기 위해서라도 법정투쟁을 해야한다는 쪽의 주장도 거세다. 지난해 물의를 빚었던 본국성금의 사용문제도 교포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남아있다. 한국에서 전달된 4백만달러의 성금중 일부는 피해자들에게 일정액씩 지급됐지만 남아있는 2백만달러의 분배문제는 새로운 불씨가 될 소지가 다분하다.
폭동이후 한흑간의 화합노력도 다각적으로 시도되기는 했다. 한인개신교 지도자들이 흑인교회를 잇따라 방문, 흑인교계및 흑인교인들에게 한흑화합을 호소했는가 하면 흑인목사들과 함께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사우스 센트럴등 흑인 밀집지역에서 영업하는 업종별 한인단체들은 지역대상 흑인청소년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거나 지역사회발전을 위한 여러가지 프로그램을 제시하기도 했다.

<흑인소년에 장학금>
그러나 이같은 화합노력만으로는 뿌리깊은 한흑간의 상호인식 차이를 줄이기에는 너무나 미약하다.
학자·사회운동가들은 두 인종간의 근본적인 상호이해·동화를 위한 노력없이 갈등해소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진단하고 있다. 폭동1년을 맞는 한인사회는 이처럼 안팎으로 불안정 요인들이 남아있다.
지난달 18일 남가주대가 주관했던 심포지엄 「한인사회의 새방향」에서는 40%의 한인업주들이 로스앤젤레스를 떠나고 싶어한다는 통계가 발표되기도 했다. 폭동으로 한인사회가 얻은 것도 있다.
한인들은 행정당국에 항의하는 방법을 배웠고 1·5세, 2세들은 한인사회에 대한 동포애에 눈을 떴다.
부모들에 비해 미국사회에 더 익숙한 이들은 예전과는 달리 한인사회의 권리를 강하게 주장하기 시작했다.
미국 주류사회도 권리를 찾으려는 코리안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기 시작했다. 【로스앤젤레스지사=이원영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