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비트] 소박한 음색에 인생 관조 담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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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 대서양의 조그만 섬나라 카부 베르드(영어로는 케이프 베르데)에서 태어난 세자리아 에보라는 늦깎이치고도 한참 늦은 40대 후반 프랑스에서 공식 데뷔했다. 인생의 혹독한 시련에 지친 그녀에게 1988년 데뷔 이후 90년대는 장밋빛 시대였다. 연이은 앨범의 대성공과 성대한 월드투어까지 그간의 불운을 보상받기라도 하듯 그녀에게는 '모르나(Morna:카부 베르드의 전통음악)의 여왕''맨발의 디바'라는 각국 매스컴의 극찬이 쏟아졌다.

특히 미국 공연에서는 마돈나와 브랜퍼드 마설리스 같은 특급 뮤지션까지 공연장을 찾아 높아진 위상을 실감할 수 있었다.

세자리아 에보라 음악의 가장 큰 덕목은 안정감이다. 음반을 쭉 듣다보면 편차나 기복이 없어 신뢰가 간다. 새 앨범 '보스 다모르(사랑의 목소리)'에서도 그 점은 변함이 없다. 새 음반은 오는 2월 8일(현지시간) LA에서 열리는 46회 그래미상 '베스트 컨템포러리 월드뮤직 앨범'후보에도 올랐다. 어쿠스틱 기타.카바키뉴(Cavaquinho: 포르투갈에서 전래된 작은 기타).바이올린.첼로.아코디언 반주를 배경으로 흐르는 그녀의 목소리는 소박하면서도 슬프다. 그 슬픔 속에서 뜻밖의 낭만이 느껴진다. 그래서 모르나를 '달콤한 슬픔의 음악'이라고 하는 걸까?

첫 곡 '이졸라다(격리된)'부터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모르나 특유의 찰랑거림이 전해진다. 앨범에서 첫 싱글로 발표된 '벨로시다드(빠르기)'의 적당한 경쾌함도 좋다. '자르딩 프러메티두(약속의 정원)'는 포크 그룹 브라더스 포의 히트곡 '그린필즈'를 리메이크한 이색적인 작품이다. 쓸쓸한 아코디언 반주로 시작되는 이 노래에서 그녀는 마치 허름한 선술집의 가수처럼 덤덤하게 노래한다. 고급스러운 어쿠스틱 기타로 시작되는 '함보이아(파티)'는 앨범에서 가장 낭만적인 노래다. 한번만 들어도 귀에 쏙 들어오는 멜로디가 인상적인 이 곡은 듣는 이를 따사로운 햇살이 쏟아지는 카부 베르드의 짙푸른 해변가로 안내한다.

세자리아 에보라의 노래에는 인생에 대한 관조가 담겨 있다. 나이 50이 되기까지 지독히도 불운했던 그녀의 인생이기에 무엇에 대한 집착 같은 건 찾아보기 힘들다. 장르적 구분을 떠나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디바의 음악이 담긴 앨범이다. 세월의 모진 시험을 견뎌낸, 세월을 두고 무르익은 목소리가 담긴….

송기철 대중음악평론가.MBC-FM '송기철의 월드뮤직'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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