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영교수의열린유아교육] 아이가 애지중지하는 물건부터 소중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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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정리 정돈하는 일 때문에 작은 사건이 있었다. 밖으로 놀러 나갔던 초등학교 2학년 손자 아이가 씩씩거리며 하얀색 비닐에 가득 담긴 물건을 힘겹게 끌어당기며 아파트 현관문에 들어섰다.

“이모 왜 내 물건을 버렸어?”하는 아이의 이마는 잔뜩 찡그러졌고, 눈에는 눈물이 가득 맺혀 있었다. “아니 웬일이야?”라는 내 말에 아이는 “이거 다 내 거야. 소중한 건데”하며 계속 울먹거렸다.

이모는 “구석에 처박혀 있는 거 치워준 건데 뭐?”하며 자신의 좋은 의도를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아이는 그 비닐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것을 하나씩 꺼내며 “이건 엄마가 준거” “이건 친구 ○○가 준거” “이건 가족사진, 가족사진을 버릴 뻔 했잖아” “이건 내 겨울방학 생활계획표”하며 버리지 말아야 할 이유들을 주워댔다. 깔끔한 어른의 눈으로 보면 다 내다버려도 무관하다고 생각할 법했다.

 나는 아이가 하나씩 꺼내는 물건들을 조심스레 정돈해 놓으며 “이모는 네 방을 깨끗이 해주고 싶으셔서 그렇게 했는데 너 정말 속상했겠다”고 했더니 아이는 눈물을 거두어들이며 “응”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 어른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하고 아이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다를 때가 많단다. 대개 어른들은 깨끗하게 치우고 정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아이들은 작은 것들이 소중하고. 오늘은 이모와 네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달랐어. 그래서 이런 일이 일어난 거야. 정말 소중한 것은 네가 잘 간직하도록 하렴.”

 더 어린 유치원 아이들은 구석구석에 작은 돌멩이, 사탕껍질, 나뭇가지 등 당장 쓰레기통에 넣어야 할 것 같은 물건들을 소중하게 놓아 둔다. 그래서 아이들 자신만이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반드시 독방이 아니라도 그 아이만 쓸 수 있는 상자, 바구니, 서랍, 선반 등이 있어야 하고 이곳에 있는 물건들은 아무리 허드레 같아도 아이의 허락 없이 치우지 말아야 한다.

아이가 좀 정리해 달라고 할 때에는 함께 정돈하는데, 이때는 아이의 물건을 조심스럽게 다루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렇게 별별 것을 다 모으는 아이들도 초등학교 3학년 이상이 되면 자신이 애지중지하던 물건들을 스스로 치운다. 장난감을 사주겠다고 제안해도 “이젠 장난감 가지고 노는 때가 지났어요. 문방구류로 사주세요”라고 한다.

아이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물건들을 조심스레 다루면 아이들은 자신이 존중받는다고 느낀다. 아이들에게 사랑을 전하는 일은 작은 일에서 시작한다.  

이원영 중앙대 유아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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