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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방」중 김덕룡만 남았다/YS 측근들 어제와 오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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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김동영씨 타계·최형우·서석재씨 도중하차/박관용실장·황명수총장 등 비정통파 “햇빛”
최형우 전민자당사무총장 아들의 부정입학사건이 터져 최 전총장이 경질된 지난 14일 오후. 김영삼대통령은 최 전총장으로부터 사죄전화를 받고 『우째 그런일이,우째 그런 일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고 한다. 최 전총장에 대한 김 대통령의 안타까운 심정이 잘 드러난 대목이다. 김 대통령의 분신과 다름없는 측근중의 측근은 고 김동영 전정무장관,서석재 전의원,최 전총장,김덕룡정무1장관이다. 이들 4인은 김 대통령이 유신에서부터 6공초까지 온갖 간난행고를 겪을때 바로 옆에서 고통을 같이 나누며 용기와 힘을 불어넣어준 사람들이다. 또 타계한 김 전장관을 제외한 3인은 YS가 민자당 대선후보를 쟁취하고 드디어 대권을 잡는데 있어서 가장 큰 공을 세웠다.
그런데 이들중 이제 「건강한 몸」으로 대통령을 보필할수 있는 이는 김덕룡장관뿐이다. 그러니 대통령이 상실감과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상도동 인맥의 맏형격이었던 인물은 고 김동영장관. 그는 74년 진산이 타계했을때 불과 한자리수의 지구당위원장밖에 가지지 못했던 YS를 야당 당수로 만드는데 가장 큰 힘이 되었다. 「YS가 하는 일은 옳다」는 신념과 함께 한번 마음먹은 것은 무슨일이 있어도 관철시키는 뚝심의 정치인이었던 그는 김 대통령이 3당합당을 결심하자 흔들리던 민주계를 다독거리며 잡음없이 합당이 이뤄지도록 했다. 그는 그러나 좋은 날을 보지 못하고 합당후 1년8개월만에 세상을 떠났다.
서석재 전의원은 YS가 대통령이 된뒤의 첫 희생자다. 그는 YS가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지난 88년 동해시 보궐선거 후보 매수사건과 관련해 유죄확정판결을 받아 의원직을 상실했다. 동해선거 승리를 통해 당시 제2야당 당수로서 많은 수모를 겪었던 YS의 위상을 높이려했던 그는 YS의 개혁추진에 걸림돌이 되지않기 위해 다시한번 자신을 희생한 불운의 정치인이다.
조직의 귀재인 서 전의원은 60년대 후반부터 김 대통령의 조직을 관리해왔다. 그는 지난 대선때도 YS사조직인 「나라사랑운동실천본부」를 운영해 동해사건이 없었다면 대통령비서실장이 됐을 것이다.
최 전총장은 71년 8대총선때 YS조직이던 한국문제연구소에 참여,김 대통령과 정치인연을 맺었다.
「YS돌격대」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김 대통령을 열심히 보좌한 그는 특히 지난해 민자당 대선후보 경선때 반YS성향의 청와대·민정계인사들을 회유와 협박,눈물로 집중공략해 YS가 대선후보가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가 당시 서동권안기부장을 만나 『YS가 대통령후보가 되지 못하면 탈당한다. 우리가 언제 쌀밥 먹고 산줄 아느냐』며 협박한 사실은 유명한 일화.
「YS의 그림자」라고 불리는 김덕룡장관은 70년 김 대통령의 비서로 출발,무려 18년을 비서로 지낸 재선의원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젊고 국회의원 경력도 짧다. 그렇지만 아무도 무시하지 못한다. 그의 야심 또한 만만치않다. 그가 최근 출판한 저서에서 『지금까지의 삶은 오로지 윗분을 위한 익명의 삶이었다. 내이름 석자를 찾은 것은 지극히 최근의 일이다』고 밝힌 대목은 음미해볼만하다. 그는 행동력보다 지략을 갖춘 YS의 보기드문 참모다.
YS의 노장층 인걸이 쇠락의 길을 밟고 있는데 반해 YS가 대통령이 되면서 빛을 보게된 인물은 박관용 대통령비서실장과 황명수 민자당사무총장이다. 이들은 YS인맥에서 최 전총장 등과 같은 정통파는 아니다. 박 실장은 서석재 전의원이 다치지 않았으면 그 자리에 오르기 어려웠을 것이고 최 전총장의 자리를 이어받은 황 총장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정치는 무상한 것. 앞으로 YS사단에 또 무슨 변화가 생길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이상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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