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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고 안전한 ‘개량 신약’에 관심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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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을 계기로 국내 제약업계가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정부도 국내 제약기업들의 신약개발 역량을 시급히 강화해야 한다고 인식하고 지원의 효율화 및 투자 확대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다국적제약기업의 성장과정에서 보듯 제약기업 글로벌화의 원천은 혁신적 신약 개발에 있다. 그런데 글로벌 신약 개발에 나서려면 0.01%의 아주 낮은 성공확률에 기대를 걸고 보통 15년간 4000억~5000억원을 투자해야 한다. 뛰어난 기술력과 풍부한 재원을 확보하지 않고 패기와 의욕만으로는 감당해 낼 수 없는 모험인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제약기업은 혁신적 신약 개발에 뛰어들 만한 충분한 연구개발(R&D) 역량을 아직 갖추지 못하고 있다. 연구 인력과 투자비 또한 글로벌 신약 개발에 필요한 R&D 임계규모를 넘어서지 못했다.

 이런 현실 인식에서 출발한 것이 개량신약 개발 전략이다. 개량신약이란 의약품의 안전성·유효성·편의성이란 세 가지 목적 중 하나가 기존 특허 의약품보다 진보된 형태의 의약품을 말한다. 개량신약은 제약기업뿐 아니라 소비자와 정부 입장에서도 많은 장점을 갖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약의 효능이나 복용의 편의성이 향상된 의약품을 기존 특허의약품보다 저렴한 가격에서 접근할 수 있다. 건강보험 재정을 운용하는 정부 입장에서는 특허의약품 시장을 저가 개량신약이 잠식하는 효과로 인해 보험 재정을 절감할 수 있다. 수출 전략품목으로 적극 육성한다면 경제적 이득과 함께 상당한 수입 대체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제약기업은 R&D 역량을 축적하고, 개량신약 판매를 통해 R&D 자금원도 확보할 수 있다.

 선진국들은 벌써부터 개량신약 효과에 주목해 왔다. 세계 제약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과 유럽연합(EU)은 개량신약에 대한 각종 규제와 허가조건을 완화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개량신약의 다양한 정의와 분류방식을 도입해 개량신약 연구를 활성화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미 FTA 협상 타결로 신약에 대한 특허보호는 강화된 반면 개량신약에 대한 기준은 여전히 모호하다. 이로 인해 특허소송이 급증하는 등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개량신약 용어를 정의하고 법제화하는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개량신약에 대해 국민과 정부, 제약업계가 같은 인식과 기준을 갖고 대처할 때 연구개발의 비효율과 낭비요소가 제거되기 때문이다.

 개량신약의 기술적 진보에 따라 차별화된 의약품 가격산정 가이드라인도 제시돼야 한다. 개량신약에 대한 가격차별화는 제약기업들이 신약 및 개량신약 개발에 전념하는 강력한 동기유발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개량신약 개발이 제대로 되지 않을 경우 특허의약품의 시장 독점기간이 더욱 늘어나 그만큼 소비자는 더 많은 약값을 부담해야만 한다. 개량신약을 징검다리 삼아 혁신신약 개발에 도전해야 할 제약기업도 R&D 투자 위축으로 성장의 기회를 잃을 수도 있다.

손영택 한국약제학회 회장덕성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