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우 충격/개혁대상된 「개혁주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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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밝힐건 밝힌다” 청와대 결론/개혁속도 조절여부·후임총장에 촉각
「경원대사태」는 마침내 김영삼정부의 개혁견인차 최형우민자당사무총장에게까지 비화,총장직을 사퇴케 했다.
구시대의 숨겨졌던 부분이 새 정부의 개혁드라이브에 의해 속속 드러나면서 개혁주역이 개혁대상이 된 것은 여간 역설적이지 않다.
○…최형우민자당사무총장은 14일 아침 차남의 부정입학 문제 해명과 거취논의를 위해 청와대에 갔다.
7시25분,비서실장실에서 박관용비서실장을 기다리던 최 총장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면서 기자에게 『나 자신은 전혀 몰랐다』며 더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대통령 묵묵부답
최 총장은 김영삼대통령이 주재한 안보관계장관회의에 참석중인 박 실장을 30여분 기다리다 박 실장의 연락을 받고 회의가 열리고 있는 청와대 본관으로 올라갔다.
김영삼대통령은 박관용실장으로부터 『최 총장이 「각하께 누를 끼쳐 괴롭다」면서 총장직을 사퇴하겠다는 뜻을 비쳤다』는 보고를 받고 말없이 듣기만 했다고 한다.
박 실장은 『오늘 오후 김종필대표가 대통령을 면담한 자리에서 후임 총장이 논의될 것』이라며 최 총장 사표수리를 기정 사실화 했다.
박 실장은 『어제(13일)밤 최 총장 부인에게 전화를 걸어 사실여부를 확인했지만 김 대통령에게는 이날 아침 보고했다』고 했다.
한편 이경재공보수석은 안보관계장관회의에 이은 박 실장 주재 수석회의중 김 대통령이 인터폰을 통해 김영수민정수석에게 사실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이 대변인은 또 『「밝힐 것은 밝혀야 하며 감추거나 변명·회피하지 않아야 한다」는게 수석회의의 결론이었다』고 말했다.
○…박관용실장을 만난 최 총장은 다음과 같이 경위를 설명했다.
『90년 당시 나는 3당합당으로 자식문제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어제 소문을 듣고 집사람을 추궁했다. 집사람은 아들이 경원대 입시에서 떨어진뒤 전문대라도 보낼 것을 걱정하던 차에 마침 길에서 이 대학교수로 있는 친구를 만나 그에게 아들걱정을 하면서 잘부탁한다고 했다고 했다. 집사람 친구는 얼마후 합격사실을 알려왔으며 고답다는 뜻의 식사를 대접했다. 그러나 단 1원의 돈을 사례로 준바는 없다고 했다.』
○…민자당내에서는 최 총장의 사퇴가 앞으로 개혁작업에 「속도조절」을 가져올지,후임총장은 누가 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러나 김 대통령의 스타일을 아는 당직자들은 개혁추진에 강도가 더해지면 더해졌지 최 총장의 일로 늦추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
후임총장에는 김윤환·이한동·박준병·이춘구의원 등 민정계출신 중진들과 김영구·김용태·정순덕의원,김종호정책위의장 등이 두루 거론.
한편 그동안 최 총장의 기세에 가위눌리다시피 했던 민정·공화계는 내심 『고소하다』는 표정들.
○민정·공화계 화색
한 민정계의원은 『최 총장이 이제까지 무슨 염치로 개혁의 칼을 휘둘러 왔는지 모르겠다』면서 『이번 일로 개혁의 대상에는 우리뿐 아니라 독야청청한척 하던 민주계도 포함돼야 한다는 사실이 입증됐다』고 매몰찬 반응.
또다른 민정계의원은 『경원전문대 부정입학 수사는 당초 교육부감찰 이후에 착수하려 했으나 청와대의 지시로 그 시기가 앞당겨진 것』이라며 『결국 이렇게 들쑤셔 놓으면 그동안 구조적 부정체계에서 일정한 기득권을 누려왔던 민주계라도 먼지가 안날 턱이 없다』고 주장.
그는 『개혁은 그래서 어려운 것이며 속도조절도 그래서 필요하다』고 목청을 높였다.
또 한 공화계의원은 『최 총장이 야멸차게 김종필대표를 구석으로 몰더니 결국 자기가 먼저 당했다』고 주장.
반면 민주계 의원들 사이에는 『최 총장의 사퇴로 당내 보수세력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개혁에 제동이 걸릴지도 모른다』 『최 총장이 재빨리 파문을 수습하고 있고 김 대통령이 더욱 개혁의 채찍을 휘두를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번 사건은 일과성에 그칠 것』이라는 비관·낙관론이 양립.
○…최형우사무총장의 부인 원영일씨는 14일 아침 진위를 묻는 보도진의 질문에 『90년에 아들(차남J씨·현재 LA유학중)이 경원전문대 시험을 치른후 평소 잘아는 교수에게 「관심을 가져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으나 남편은 그런 사실을 모른다. 이와 관련해 금품을 준 적도 결코 없다』고 해명. 원씨는 『관심 가져달라』고 했다는 자신의 말이 부정입학을 청탁한 것처럼 비치자 다시 『마침 아는 교수가 있어 합격여부를 알 수 있으면 속히 알아봐 달라는 정도의 부탁이지 그 이상의 의미가 아니다』고 강력히 부인.
○남편은 모르는 일
이에 앞서 최 총장은 자신의 아들에 관한 보도가 나기 전인 13일 아침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경원대사태와 관련,『교수라는 이가 숨어서 나타나지도 않으면서 공갈협박을 하는 것 같다. 우리 당내에 소문이 도는 K,L의원 문제를 알아보니 근거없는 얘기더라』고 촌평. 그는 또 『내 아들은 대학 아닌 전문대라 청탁과는 무관하다. 여하튼 자식문제만큼은 누구도 장담못하는 가보다』고 말했다.
한편 민자당내에서 부정입학 「리스트」에 오른 것으로 소문이 돌던 K의원은 14일 『내 자식은 물론 친척에서조차 경원대에 시험을 치르거나 다닌 사람이 없다』며 펄쩍 뛰었다. 또 L의원과 또다른 L의원도 『아들은 고대재학중이고 딸은 재수생』 『큰딸은 서울대생이고 나머지는 중고교 재학중』이라며 『도대체 왜 우리 이름이 거론되는지 모르겠다』며 울상.
당내에서는 『「재산공개」 다음 순서는 「자식공개」라는 시중의 소문이 맞는가보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김현일·노재현·이상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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