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대입시도 개혁바람이…서울대 「제모습 찾기」개선안을 보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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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최근 서울대가 발표한 미술대 입시요강을 보며 정상적이지 않았던 것이 정상으로 복귀하는 개혁의 한자리에 미술대학 입시도 함께 하는듯하여 무척 반가운 마음이다.
94학년도 입시부터 적용된다는 이 입시요강은 실기고사의 평가원칙을 종래의 「객관적 묘사력」에서「창조적·예술적 표현력」으로 바꾸고, 10여개의 석고상 데생에 한정해 선택·실시됐던 소묘시험의 출제대상을 석고에 한정하지 않고 인물-정물등 다양한 대상으로 확대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쉰살을 넘긴 화가들이라면 누구나 소묘시험에 석고가 지정된 적이 없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당시 학생들은 대부분 화실에 다니지도 않았고, 그저 방과후 미술반에서 열심히 그림을 그려 미대에 갔다.
각자 자신이 소묘·수채화·유화등을 두루 그렸으며 종종 선생님이나 선배들이 지도해 주었다.
이것이 과외활동이자 또한 입시준비였었다.
그러나 근래들어 미술대입시는 엄청나게 달라졌다.
소묘시험은 으레 그리스·로마 황제나 장군의 흉상들을 그리는 것으로 정형화됐다.
서구인들도 자기네 조상을 그리지 않고 미술대학에 가는데 우리학생들이 시저나 아그리파장군을 그려야 한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심지어 적지않은 대학은 아예 몇개의 석고를 미리 지정해 공개하기까지 한다.
실기시험장에서 나쁜 자리를 배정받은 수험생은 평소 외운 그림을 그려 제출하는 것이 고지식하게 불리한 자리에서 그대로 그려 떨어지는 학생보다 현명하다고 인정받는 세상이 돼버렸다.
이런 제도 아래서 창의성있고 개성있는 예술지망생을 선별하기는 불가능하다.
미술대학뿐 아니라 전국 각미술계열대학 역시 마찬가지다.
서양인 조각의 석고, 수묵채색의 정물화, 정물 수채화, 틀에 박힌 구성, 서양석고 베끼기 조소…. 한결같다.
개성적인 표현이나 과감한 조형적 표출은 입시에 관한한 자살로 간주된다. 창의성과 개성이 가장 중요한 예술에서 이러한 방식의 입시는 사실 끔찍한 일이 아닐수 없다.
이번 서울대 미대 입시 개선안은 완전히 만족할 수는 없지만 과도적인 방안으로 매우 신중한 선택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다만 한가지 수험생의 혼란을 줄일수 있도록 최소한 2년후에 실시하도록 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또한 여기에서 그치지말고 실기시험방법과 내용이 점진적으로 개선됐으면 한다.
소묘는 단순한 석고 소묘에서 드로잉까지로 범위를 넓히며, 대상의 사실적 표현과 함께 환상적 조형능력까지 테스트할수 있는 시험도 부과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긴다. 「한방에 몇개의 의자와 탁자, 그리고 한 소녀와 개가 있다. 이것을 조형적으로 표현해 보라」는 시험문제 같은것말이다.
화실에서 붕어빵 찍어내듯하는 입시실기교육은 이제 지양돼야 한다.
학교든, 화실이든 폭넓은 조형교육을 받고 시험을 볼수 있도록 돼야 한다. 그래야 학교도, 화실도 정상화될 수 있다.
서울대 입시 개선안이 계기가 되어 우리나라미술대 입시의 근원적 개혁이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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