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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집단안보」 서둘러야/문창극(특파원시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대미 의존「온실안보」 기대 버릴때
최근 대부분의 미국신문 국제면에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정세에 관한 기사가 거의 매일 눈에 띄는 것을 보면서 이 지역에서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물론 북한의 핵개발과 관련된 기사가 가장 높은 빈도를 차지하고 있고 다음으로 냉전종식이후 불안해지는 동북아정세에 대한 우려와 대응에 관한 기사들이다.
동북아의 정세불안을 야기시키는 주요 요인으로는 북한의 핵개발이외에도 중국의 무력증강이 자주 거론되고 있다. 탈냉전시대의 일반적인 군비감축 추세와 달리 중국은 새로 항공모함의 건조를 계획중이며 전국인민대표대회는 매년 15%의 국방비증액을 결의했다. 중국이 멀리 인도양의 코코섬에서부터 동중국해의 우디섬에 이르기까지 전초기지·비행장 등을 건설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오고있다.
소련의 팽창정책에 맞서 아시아에 진출했던 미국은 이제 그 필요성이 없어짐으로써 철수를 서두를 것이고 이에따른 이 지역의 힘의 공백을 중국이 메우려하고 있는 형세라고 분석하고 있다.
이러한 불안한 지역정세를 극복하는 수단으로 유럽의 집단안보기구와 같은 성격의 아시아 집단안보기구 구상이 대두되고 있다. 지난 86년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대통령이 이 구상을 제안했을 때만해도 조지 부시미대통령은 아시아 안보는 미국과 아시아내의 미국우방간의 쌍방안보공약으로 유지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논리를 폈다. 그러나 빌 클린턴행정부 출범이후 미국의 태도는 변하고 있다.
윈스턴 로드 국무부 동아­태담당차관보는 상원인준 청문회에서 『이지역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으므로 위기가 닥치기 전에 신뢰할 만한 안보체제가 구축돼야 한다』고 집단안보체제 도입필요성을 설파한 바 있다. 바버라 맥도널드 캐나다외무장관도 지난달 아­태집단안보기구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아시아의 집단안보기구창설에 원칙적으로 반대하고 있는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 일총리도 분쟁해결과 정치적 대화의 필요성을 충족시킬 지역기구의 필요성은 인정하고 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월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과 처음으로 안보문제의 논의를 개시한바 있다.
한국의 경우 안보온실에서 근 반세기를 보내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국의 안보적 관심은 오직 북한의 남침만을 걱정하는 것이었고 이를 위해 미국의 지원을 최대로 얻어내는 것이 외교의 큰 목표였다. 따라서 안보적 시각이 자연히 한반도 내로만 축소될 수 밖에 없었으며 이 때문에 지역안보기구라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일부에서는 이같은 시각을 「반도병」이라고 꼬집기도 한다. 귀에 거슬리기는 하지만 한국정부로서는 이같은 지적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미국과의 양자관계로만 한반도의 안보가 해결될 시기는 지나고 이제 주변 국가들과 지역안보를 같이 논의해야 할 시기가 곧 닥쳐올 것이기 때문이다.
주변국들은 이같은 시기의 도래에 대비,각자의 목소리를 준비하고 있다. 한국도 이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중국·일본·러시아·미국 더 나아가 아세안 국가들까지 모였을때 이 지역 안보를 위해 한국이 제시할 원칙과 방안이 준비돼야 하는 것이다.
북한 핵문제도 이러한 기본 맥락에서 대처방안이 나와야 한다.
이에대한 정부의 대응이 남북한관계에만 집착된다면 미봉책은 나올수 있어도 장기적인 안보에는 도움이 될수 없는 것이다.
어느 민족이나 국가든 간에 지정학적 위치가 운명을 결정하는 경우가 종종있겠지만 이제 한국은 대륙에 붙은 반도라는 지정학적 위치를 냉정히 인식,새로운 안보 방안을 모색해야할 것이다.<워싱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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