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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 교수 공동 관찰기 / ① 제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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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중앙일보와 한국정당학회(회장 김수진 이화여대 정외과 교수)는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합동연설회를 더욱 심도 있게 전달하기 위해 정치부 기자와 정치학과 교수가 같이 쓰는 '기자-교수 공동 관찰기'를 싣는다. 22일 제주에서 막이 오른 합동연설회는 다음달 17일까지 전국 13곳을 돌며 계속 열린다. 정치부 기자들의 현장감 있는 분석과 정당학회 소속 정치학과 교수들의 전문성이 더해진 공동 관찰기는 한나라당 경선 현장을 보다 생생하고 깊이 있게 전할 것이다.

첫 경선지는 중요하다. 초반 기세를 잡느냐, 못 잡느냐가 여기서 판가름 나기 때문이다. 2002년 민주당 후보 경선이 그랬다. 당시 민주당의 첫 경선지였던 제주에서 민심은 '이인제 대세론'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제주 경선 1위는 한화갑 후보). 첫 경선에서 선두 자리를 확보하지 못한 이인제 후보는 뒤이은 울산 경선에선 노무현 후보에게 1위 자리를 내줬다. 제주발(發) 변수는 결국 그해 말 대선에도 영향을 미쳐 노무현 대통령을 만들었다.

미국 대선에서도 첫 경선은 큰 변수다. 전통적으로 민주당과 공화당의 첫 프라이머리(예비 선거)가 뉴햄프셔에서 시작된다. 인구 123만 명의 자그마한 주(洲)지만 지난 50년간 뉴햄프셔에서 지고도 당선된 대통령은 1992년 빌 클린턴이 유일했다. 지미 카터는 경선 출발 전 무명이었지만 뉴햄프셔에서 승리하면서 민주당 후보로 발돋움했다. 그래서 '뉴햄프셔에서 지면 대통령 당선은 물 건너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올해 한나라당 경선 후보 첫 합동 연설회도 제주에서 출발했다. 제주는 전국 민심의 척도다. 제주는 탈지역주의와 도시화의 균형감각을 보유하고 있다. 영남.호남.충청 등 지역주의로부터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서울과 한 시간 거리로 소통이 가능해 도시화 성향이 강하다. 지난해 5.31 지방선거 땐 한나라당 45.6%, 열린우리당 26.6%, 민주노동당 20.1%, 민주당 8.0%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그만큼 제주도민의 성향은 진보.보수가 팽팽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제주가 대통령 선거에서 '시작의 반(半)'으로 중요성을 띠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삼복더위 속에 열린 22일 제주 한라체육관 연설회는 '나를 필승의 선수로 보내 달라'는 4인의 후보가 사자후를 토했다. '경제만은 확실히 살리겠다'는 이명박 후보, '믿을 수 있는 대통령'을 강조한 박근혜 후보, '서민 대통령'을 내건 홍준표 후보, '통일 대통령'을 역설한 원희룡 후보는 각자 대선 후보의 비전과 역할을 분담하는 것처럼 보였다.

특히 '초반에 기세를 잡아야 한다'는 이.박 후보의 대결이 후끈했다.

제주 민심은 어떤 선택을 할까. 이 후보는 "제주를 어찌 만들겠다는 공약을 안 하겠다. 말은 할 수 있지만 진짜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배수진을 쳤다. 반면 박 후보는 "제주가 자치도가 된 지 1년에 달라진 것이 없었다. 진정한 의미의 자치도를 만들겠다"며 민심을 어루만졌다.

이 후보는 검증 공방 속에서도 지지자들의 뜨거운 성원을 확인함으로써 큰 힘을 얻었을 것으로 보인다. 박 후보 역시 한층 달라진 연설 솜씨에 환호하는 지지자들에게서 자신감을 얻었을 것이다. 첫 연설회의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이날 당장 투표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2002년의 제주나 뉴햄프셔 같은 영향력이 나올지는 미지수다. 아프가니스탄 인질 사태가 유권자의 시선을 상당 부분 빼앗고 있는 것도 돌발 변수가 되고 있다.

양길현 제주대 평화연구소장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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