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두우시시각각

바보들의 행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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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대선이 다섯 달도 남지 않은 지금 정치권에서는 이해하지 못할 말과 행동이 난무하고 있다. 감정에 사로잡혀 앞뒤를 살피지 못하기에 그렇다. 그 언행이 바로 자신의 발목을 잡을 게 뻔한데도, 부메랑이 돼 자신에게 날아들 게 눈에 보이는데도 말이다. 누가 더 바보짓을 잘하는지 경쟁이라도 하는 것 같다.

 현 시점에서 감정 대립이 심각한 곳은 한나라당이다.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후보 캠프는 생사를 건 혈투를 벌이고 있다. 네거티브 선거전의 부작용이나 경선 후유증을 지적하자는 게 아니다. 지금 두 캠프 사이에서 벌어지는 상대방 흠집 내기쯤은 약과다. 본선에 접어들면 지금보다 훨씬 지독한 공세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걱정하는 경선 후유증도 얼마든지 기우로 만들 수 있다. 경선이 끝나는 순간부터 승자가 포용력만 보인다면, 이겼다고 교만을 부리지만 않는다면 풀어나갈 방법이 있다.

 정작 문제는 눈앞의 싸움에 정신 팔린 나머지 스스로 함정에 빠지는 데 있다. 정치력도, 철학도, 전략도 없이 마구잡이로 주먹을 휘두르는 데 있다. 집안싸움을 밖으로 끌고 나가 어쩌자는 것인가. 상대방의 네거티브 캠페인을 중단시킬 방법이 고소밖에 없었다고? 상대방이 고소를 하니 방어하기 위해 맞고소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그 결과 검찰이 야당 대선 후보를 검증하는 전대미문의 사태를 맞게 됐다. 검찰을 탓할 게 없다. 이·박 두 후보가 자초한 것이다.

 서울 도곡동 땅 문제를 놓고 이 후보의 처남 김재정씨가 고소한 것은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이다. 그것으로 지지율 하락을 막았다고 위안을 삼을지 모르지만, 검찰이 김씨의 계좌와 그 연결고리를 들여다볼 계기를 제공했다. “계좌를 열면 그때부터는 누구도 중단할 수 없다. 계좌 추적을 시작하는 것은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과 같다.” 금감원 관계자의 말이다. 검찰이 “경선 전에 수사 결과를 내놓겠다”고 나서자 고소 취하와 강행 사이를 왔다 갔다 한 건 또 뭔가. 이 후보의 주민등록 초본 유출 사건이 박 후보에게 충격을 줄 것 같자 “검찰 수사를 지켜보자”고 검찰에 힘을 실어주는 대목에서는 어안이 벙벙하다. 내게 불리한 수사는 반대하지만 유리한 수사는 지지한다는 것인가. 전략도 없고 논리의 일관성도 없다.

 박 후보 측도 오십보백보다. 본인의 동의 없이 남의 주민등록 초본을 떼는 행위는 주민등록법 위반이다. 아무리 급하더라도 불법적 수단을 통해 공격 자료를 획득하려 해서는 안 된다. 이미 시대가 바뀌었다. 과거에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문제가 된다. 국정원 태스크포스(TF)팀이 이 후보의 재산 내역 등을 조사한 데 대해서는 한목소리를 냈어야 했다. “본질은 이 후보에 대한 의혹을 밝히는 것”이라며 강 건너 불구경하듯 느긋하게 즐길 일이 아니었다. 이래서는 “당과 정권교체가 최우선”이라는 박 후보의 진정성이 의심받는다. 또 박 후보가 본선에 진출했을 경우 상대방 후보 측이 과거 정보기관의 자료를 입수해 폭로전에 나서더라도 반격할 논리가 궁해진다.

 정당의 대선 후보 경선에 검찰의 개입을 자초한 것은 그야말로 바보짓이다. 검찰은 결코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 그걸 뻔히 알면서도 해소하지 못한다면 정치력의 빈곤이다. 당장 두 후보가 만나든지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중재하든지 해서 상대방에 대한 고소를 취하하는 게 순리다. 당내 선거조차 법에 호소하는 수준의 정치력으로 집권하겠다고 나서는가.

김두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