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과 주가 그리고 연말 대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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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 18면

연말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후보 검증 공방이 치열하지만, 증시에선 관심 밖이다. 과거 같으면 대선과 주가 흐름을 연결한 그럴듯한 시나리오들이 나올 법도 하건만, 올해는 영 딴판이다. 대통령이 누가 된들 경제와 증시는 그저 가던 대로 흘러갈 것이란 자신감 때문일까.

올해는 국내 증시에서 반복됐던 ‘대통령 임기 말년 징크스’도 찾아볼 수 없다. 노태우·김영삼·김대중 3명의 대통령 재임 시절 주가 흐름은 매우 비슷했다. 임기 초반엔 주가가 올랐고, 후반기(특히 말년)엔 여지없이 떨어졌다. 그러다 보니 5년 단위로 투자자들 입에선 “좋다가 말았네”란 소리가 터져나왔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에선 다르다. 노 대통령 취임 당시 560대였던 코스피지수는 지금 2000을 넘보고 있다. 상승률이 무려 250%에 달한다. 그래서일까. 노 대통령은 증시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표시해왔다. ‘경제가 나쁘다’ 든지 ‘정부는 뭐 하느냐’는 비판이 나올라치면, 노 대통령은 “증시가 이렇게 좋은데 무슨 소리냐”고 되받아쳤다. 그는 주가 수준이 한 나라의 경제와 기업의 실력을 반영하는 종합성적표라고 확신하는 듯했다. 그는 2005년 공개적으로 주식형펀드에 가입하기도 했다.

그랬던 노 대통령이 최근 잇따라 증시 과열을 경고하고 나섰다. 지난주 열린 2차 금융허브회의에서도 신용융자와 과잉유동성 문제를 언급했다. 대통령의 발언 이후 정부 관료들은 몸이 달았다. 증권사 사장단 회의를 소집해 증시의 속도조절을 논의케 하는 한편 여차하면 정부가 나설 것이란 구두탄을 계속 날리고 있다. 재정경제부는 한국은행이 콜금리를 올리자 박수를 보내는 진풍경까지 연출했다.

왜 그럴까. 노 대통령은 증시가 너무 달아올랐다가 푹 꺼지는 일을 걱정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주가 거품이 꺼지면서 경제가 흔들리고 투자 손실을 입는 투자자가 속출하는 사태를 예방하고 싶은 것이다. 아울러 정치적 판단도 깔려 있을 수 있다. 주가가 꾸준히 완만하게 올라, 새 대통령이 선출되고 본인이 퇴임하는 연말연초까지 증시가 훈훈하길 바라고 있을 법하다.

경제의 종합성적표(주가)가 A를 나타내고 있는 상황에선 야당 대통령 후보의 경제 실정(失政) 공격도 무뎌질 것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럴 때 퇴임하면 본인도 졸업 성적
이 A인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주가 흐름이란 게 그렇게 생각대로 조절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원하는 방향이 있다면 그와는 거꾸로 가기 일쑤인 게 주가다. 지금 증시의 내로라하는 전문가들도 노 대통령의 희망과 비슷한 주가 흐름을 전망하고 있긴 하다. 3분기 중 조정을 거쳐 4분기(연말)에 연중 최고치를 기록할 것이란 예상이다. 하지만 현 증시는 한껏 몸이 달아 탄력이 붙은 상황이다. 글로벌 증시 전반의 흐름 또한 그렇다. 따라서 일단 3분기 중에 갈 데까지 가보면서 에너지를 한껏 분출한 뒤 4분기에는 오히려 조용하게 휴식을 취할 가능성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또 다른 시세 분출은 내년 새 정부 출범 이후 나타날 공산이 크다. 다만 올 4분기 중 조정이 오더라도 고통보다는 지루함 정도일 것으로 예상된다. 아무리 봐도 노 대통령과 증시는 궁합이 잘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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