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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끝난 곳에서 질주는 시작된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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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 15면

엔듀로(Enduro)라고 불리는 모터바이크 레저가 있다. ‘자동차나 모터바이크의 장거리 경주’를 뜻하는 엔듀로는 할리 데이비슨으로 대표되는 아메리칸바이크나 레플리카(일명 쑝카)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왠지 멋져 보이고 빨리 달리는 게 모터바이크’라는 인식의 건너편에 있다고 보면 된다. 험난한 산길이나 계곡, 울퉁불퉁한 돌길만을 골라 모터바이크를 끌고 가다시피 한다. 그게 바로 엔듀로의 매력이다.
 
자연을 마셔라, 엔듀로 모터바이크

“펑, 펑펑, 애∼앵.”

지난 8일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비암리 ‘송구레미’. 평소 군부대 사격장으로 쓰이는 산기슭 공터는 일요일인데도 때 아닌 대포 소리로 요란하다. 오프로드 모터사이클

‘엔듀로 머신’이 뿜어내는 굉음이다. 이 모터바이크에 대한 첫인상은 ‘까칠하다’고 할 수 있다.

일단 시트의 높이가 사람 허리까지 와서, 다리 짧은 사람은 앉는 것도 수월치 않다.
암벽이나 돌에 바닥이 닿지 않도록 차체를 높이 설계한 것이다. 또한 타이어 표면에는 도깨비방망이의 돌기처럼 굵고 단단한 트레드가 박혀 있다. 동호인 사이에서 ‘깍두기’라고 불리는 돌출된 트레드는 육중한 모터바이크가 산길을 치고 올라갈 수 있는 지렛대 역할을 한다.

이날 올해 처음으로 엔듀로 동호회 다섯 팀이 모여 ‘팀 배틀’을 벌였다. 단체 경주는 각 팀당 5∼10명의 선수가 한 팀을 이뤄 정해진 코스를 도는 것이다. 각 팀당 가장 늦게 들어오는 선수의 기록으로 순위를 매기는데, 그래서 실력이 가장 떨어지는 선수를 어떻게 끌고 오느냐가 관건. 협동심과 팀워크가 생명이다.

울창한 잡목으로 둘러싸인 송구레미 산길. 경사도 30∼40도의 산길은 비 온 뒤라 등산화를 신고도 미끄러질 정도다.

과연 모터바이크가 올라올 수 있을까? 아니나 다를까. 움푹 파인 오르막에서 모터바이크는 스로틀을 당겨도 뒷바퀴가 헛돌고, 머신은 균형을 잃고 자빠지기 일쑤다. 세우고 자빠지고를 거듭한 끝에 급기야 머신을 내팽개치고 땅바닥에 주저앉는 사람도 여럿 있다. 이럴 땐 동료가 달려와서 도와주거나 아니면 올라온 길을 되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110㎏의 머신과 함께 뒹굴다 보면 녹초가 돼요. 엄청난 체력이 필요하죠. 그래서 엔듀로를 타는 사람들은 웨이트 트레이닝과 달리기를 꾸준히 병행하죠.” 2006년 KMF(한국모터사이클연맹) 엔듀로 국제오픈에서 종합 1위를 차지한 임호정(35)씨의 말이다.
 
고생을 사서 하는 사람들

오프로드 모터바이크 라이더들의 모습은 마치 영화 ‘매드맥스’의 캐릭터를 연상시킨다. 무릎 아래까지 올라오는 육중한 부츠부터 시작해 무릎보호대, 허리보호대, 팬츠와 저지(상의), 어깨보호대, 팔꿈치보호대 그리고 턱 부위를 꽁꽁 감싼 헬멧까지. 이런 장비에 진흙을 잔뜩 묻히고 주유소에 들르면 영화에서처럼 ‘세기말을 상징하는 폭주족’으로 오해를 받기도 한다.

엔듀로 동호인들은 대개 30∼40대가 주를 이룬다. ‘고생을 사서 하는’ 레저인 엔듀로를 20대가 소화하기에는 버겁다는 게 그 이유다.

“20대 애들은 가입했다가 빠져나가는 경우가 많다. 산에서는 스피드를 내기보다는 인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인생 경험이 있어야 엔듀로의 맛을 알 수 있다"
이기훈(33·자영업)

“모터바이크를 타고 산길을 달릴 때는 언제 어디서 위험이 닥칠지 모른다. 처음엔 당황하지만 이내 빠져나갈 길을 모색하고 위기를 헤쳐나간다. 아웃도어에서 삶의 지혜를 배우게 된다.”이내정(34·포토그래퍼)

“매주 일요일마다 라이딩하는데 토요일 밤에는 잠이 오지 않는다. 내일 어떻게 하면 잘 탈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 떠오른다. 컨디션에 지장을 주기 때문에 주말엔 술도 안 마신다.”김종덕(36·회사원).

“산이나 계곡에서 혼자 110㎏의 머신을 끌고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누구나 위험에 빠지게 되는데 이때 동료의 도움이 없으면 갈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레저보다 끈끈한 정이 있다.”강희종(36·회사원)
 
가장 끈끈한 커뮤니티를 가진 레저

국내에서 엔듀로를 타는 사람은 아직 많지 않다. KMF 엔듀로위원회에 따르면 동호인 숫자는 500명 수준이다. 그러나 엔듀로는 가장 왕성한 온라인 커뮤니티를 가진 레저 중 하나다. 전국에 23개의 동호회가 있는데, 각 동호회의 홈페이지를 통해 모터바이크 구입에서부터 입문하는 방법, 동호회 대항 시합 일정, 국제대회 투어 참가 등 거의 모든 활동이 이뤄진다.

“엔듀로는 동호회에 가입해서 배우는 게 유일한 방법이에요. 대부분 신입 멤버를 교육하는 베테랑이 한 명씩 있죠. 일단 오프라인 모임에 오면 모터바이크를 사기 전에 기존 회원들 것을 타볼 수가 있어서 좋죠. 그때부터 입문이 시작되는 거죠.” 엔듀로 동호회 그린투투(http://cafe.daum.net/hjtoto)에서 단장을 맡고 있는 박종호(45)씨의 말이다.

국내 동호인들끼리 겨루는 KMF 엔듀로 대회는 1년에 세 번 열린다. 각각 국제오픈·국내오픈·국내라이트 세 등급으로 나눠 경기를 치른다. 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들 중에 모터바이크를 타는 전문 라이더는 한 명도 없다. 전부 동호인이라고 보면 된다.

국내 코스를 벗어나고 싶은 사람들은 태국에서 열리는 아시아대회에 출전하기도 한다. 직접 모터바이크를 싣고 가거나 현지에서 빌려 탈 수 있는데, 비용은 전부 출전자가 부담해야 한다. 출전 자체가 해외여행이자 레저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국제대회에 참가하는 인원은 매년 20여 명, 갈수록 인원이 늘어나는 추세다.

엔듀로위원회 우병국씨는 “외국은 모터바이크와 함께 자연을 즐기는 문화가 너무 자연스러운데 우리는 아직도 바이크 타는 사람들을 왠지 못마땅해한다”며 “앞으로 레저문화가 다양해지면 자연 속에서 땀방울을 흘리는 엔듀로에 빠져드는 사람이 늘 것”이라고 말했다.

엔듀로 머신을 구입하려면?

엔듀로 머신은 배기량에 따라 250㏄ 이하, 250∼450㏄, 450㏄ 이상으로 나뉜다. 보통 초보자는 250㏄나 그 이하 급을 사는 게 좋다. 일본의 4대 메이커인 야마하·혼다·가와사키·스즈키에서 엔듀로 머신을 내놓고 있는데, 가격은 800만∼1000만원 선이다. 유럽 제품은 그보다 더 비싼데, 모터바이크 메이커로 유명한 오스트리아제 KTM 제품의 경우 약 1200만∼1500만원 선이다. 중고 엔듀로 머신의 경우 신차 가격의 절반 정도라고 보면 된다.

전국 엔듀로 동호회

●그린투투(서울) cafe.daum.net/hjtoto ●매드라이더스(서울) www.madriders.net ●2&4 Enduro(서울·경기)cafe.daum.net/dr350 ●KRC(서울) www.trialzone.co.kr ●이맥스(서울) cafe.daum.net/emax ●신촌 독수리(서울) sceagle.dnip.net ●우람스파이더(서울) home.freechal.com/wrsp ●K2 Racing(서울) www.k2motion.com ●양산박엔듀로(서울)cafe.daum.net/yangsanbakenduro ●팀스왈로우(충남) cafe.daum.net/teamswallow ●팀 Frog(대전·충남) www.teamfrog.net ●전북토탈모토크로스(전북) cafe.daum.net/kimtotoal ●엑스로드(광주·전남)cafe.daum.net/xxroad ●DOM(대구) dom2000.com ●양산 타이거(경남) www.teamyst.com ●경주CrossOff(경주) cafe.daum.net/crossoff ●TNT Enduro(부산) www.tntpusan.com ●부산 다크호스(부산) teamdar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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