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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인의 풋푸한 신작들|권대웅·김재석·배진성씨 시집 잇단 출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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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겨울에서 깨어나 새로운 각오로 일상을 바투잡는 봄, 그래서 문학작품이 덜 읽힌다는 춘궁기 문단에 젊은 시인들이 잇따라 시집을 펴냈다. 권대웅·김재석씨는 처녀시집으로 각기 『당나귀 의 꿈』『까마귀』(민음사)를, 배진성씨는 두번째 시집『잠시 머물다가는 지상에서의 사랑』(문학사상사간)을 펴냈다.
『더 이상 가늠할 것이 없다 저 지상에/놀던 짐승들 없고 발 닿을 곳 없고/빽빽하고 거대한 그 무엇들이 나의 눈을 어지럽힌다/높이 가늠할수록 정확하던 지상은 이제 없다』(「솔개는 없다」중).
8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문단에 나온 권대웅씨(31)의 시들은 상실감으로 가득 차 있다. 솔개와 갈매기가 날고 당나귀와 공룡들이 있는 목가적 장치를 쓰면서도 그것들은 한결같이 자연적·원초적 삶과 떨어져있다.「높이 가늠할수록 정확하던 지상은 이제 없다」는 시구에서 볼 수 있듯 권씨는 파편화된 현대적 삶의 불모성을 아프게 드러내고 있다.
『물 흐르는 대로/마음 주어버린 송사리들/냇가에서 강으로/결국 바다로가 둥둥 떠올라 죽고』(「신노자송」중)
강진에서 태어난 김재석씨(38)는 전통과 자연속에 머무르며 현대의 삶을 꼬집고 있다. 90년『세계의 문학』을 통해 등단한 김씨는 무위자연을 거슬러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현대의 삶을 비판하는 시들을 쓰고 있다.
『이제는 세상 속으로 힘껏/단 한번만 내던지시면 됩니다/시멘트벽을 들이받으면서도/저는 이제 스스로 살아날수 있습니다/어머니, 풀었던 옷고름 여미시고/보십시오/저는 지금 아스팔트위에서도 이렇게/세상을 웬만큼은 돌리고 있습니다/아직은 큰 절 올릴수는 없지만,』(「또다시 팽이」중)
88년『문학사상』을 통해 등단한 배진성씨(27)의 시들은 치열한 일상적 삶에 대한 반성에 내던져진다. 유년의 시골집 마당 흙에서 전통이나 가정의 상징인 팽이채를 맞아가며 돌던 팽이가 이제 아스팔트 위에서 제 홀로 돌고 있지만 그래도 그의 시적 구심은 전통을 향하고 있다. 현대문명의 세례를 받고 살아가는 젊음이면서도 그 삶에 대한 반성을 자연·고향·전통 등과 어떻게든 관계를 맺어 끌어내려는 세 시인의 시적 안간힘이 소망스럽다. <이경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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