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돕기에 바친 삶 20년 야채상 이준상씨|"번돈 남위해 써야 마음 편하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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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산다는게 무엇인가. 이준상씨(38·서울 동부청과시장 야채상)의 삶을 들여다보면 먼저 이런 생각이 든다.
돈은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집은 작은 것보다 큰 것이, 자리는 보다 높은 것이 좋은게 인지상정이다. 돈이 들어오는 족족 남을 위해 쓰고, 그것도 모자라 전세금을 털어 사글세로 전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푼수」다. 이씨가 바로 이 푼수다. 그것도「공증」된 푼수다. 이씨 주변사람들은 한결같이 그렇게 말한다. 그는 겉으로만 깨끗하고 뒤로는 구린내가 진동하는 못된 「일부 고위층」과는 격이 다른 사람이다.
매달 l백50만원쯤은 버는데 이씨는 노상 적자다. 고아원·양로원·노인정 몇몇은 아예「고정 기탁처」고, 딱하다 싶은 사람이 있으면 있는대로 주고 본다. 돈도 주고 배추도 주고 무도 준다. 아무 것도 없을 땐 몸으로라도 때워 준다.
오전 10시∼오후6시, 이 시간 그의 야채가게의 문은 열린 날보다 닫힌 날이 더 많다. 서울 은천노인복지회 방문, 전농동 굴다리 밑 무료급식 봉사, 지역신문 무료배달이 거의 매일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이 시간에 이어진다.
불우이웃돕기 모금, 애경사 안내장 돌리기, 장학금 전달 같은 일은 시도 때도 없다. 만성 신부전증 환자 박모군(15), 반신불수 고모씨(여·46), 뇌혈관 기형병 임모군(19), 뇌일혈중풍환자 조모씨(47), 소녀가장 김모양(19)돕기 등이 모두 지난 한해 이뤄졌다.
액수로 총 3천만원이 넘는 굵직한 이 모금활동을 모두 이씨 혼자서 해냈다. 10만원짜리 성금, 식품·의류 전달 같은「잔챙이」이웃돕기까지 합하면 책 한권 분량은 족히 넘을 봉사기록이다.
이씨는 최근 아내 박순옥씨(33) 를 딸(10) 아들(8)과 함께 고향으로 내려보냈다. 17번의 이사 끝에 밀려온 1평반 남짓의 공간이 그의 가족을 갈라놨다. 박씨는 지금 전주의 시누이 집에 얹혀 살며 식당에 나간다.
이쯤 되니 시장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이웃돕기에「미쳤다」고 하는 말이 설득력을 가진다. 왜 그는 광적(?)으로 이웃을 돕는가. 이씨에게는 다소 미안하지만 그의 집요한 봉사정신에는 일종의「자기최면」이 숨어 있다는 느낌이다.
그는 어릴적 남에게 무엇이든 나눠주기 좋아하는 할머니로부터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전북 완주 봉동초등학교 시절부터 서울 경남상업전수학교(현 청량실업고) 졸업 때까지 그는 계속 학급「봉사부장」이었다. 봉사에 대한 자기최면과 세뇌(?)가 모두 성장기에 이뤄진 것이다.
14살 때 맨손 상경해 낮에 채소장사를 하고 밤에 학교를 다니면서 그는 주산 7단을 따냈다. 밤을 쪼개 그는 가난한 후배들에게 자장면을 사 먹여 가며 주산을 가르쳤다. 아내 박씨도이 때 만났다.
이웃돕기 인생 20여년, 그는 자신은 물론 아내 명의로도 지금까지 예금통장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는 『돈이 있으면 도와줘야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자기 뒤주에 쌀 떨어진 줄도 모르면서…. 동부청과시장 사람들은 이런 그를 돕기 위해「이준상 후원회」를 만들고 있다. <김창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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