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슈 인터뷰] 임좌순 중앙선관위 사무총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4.15 총선이 1백일 남았다. 중요한 선거다. 누가 이기고 지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과연 정치개혁을 이뤄낼 수 있느냐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돈 안 쓰는 공명선거가 된다면 정치발전의 큰 진전이다. 아니면 우리 앞날은 결코 밝지 못하다. '선거가 바로서야 정치가 바로서고, 정치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는 논리가 성립한다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책임은 막중하다. 공명을 지키고 불.탈법을 막는 1차적 책임이 선관위에 있다. 선거관리의 구체적인 작업을 지휘하는 임좌순 선관위 사무총장을 만났다.

벌써부터 선거 바람이 뜨겁게 불고 있다. 대통령과 각 당은 목숨 걸고 총선 승리에 집착하는 모습이다. 너 나 할 것 없이 '올인'을 외치고 있다. 분위기가 거칠어지면 가장 위협받는 부분은 바로 공명이다.

이런 정치권을 상대로 선거 관리를 책임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유지담 위원장은 선전포고를 했다. 신년사를 통해서다. "2004년을 '병든 정치 수술하는 해'로, 수술 날짜를 4월 15일로 잡았다"고 선언한 것이다.

더구나 선관위는 이번 4.15 총선을 계기로 숙원인 '선관위의 독립과 중립'을 확실히 챙기고, 나아가 '강력한 선관위'로의 위상 확립도 노리고 있다.

선관위로서는 절체절명의 위기이자 기회인 총선 관리를 현장에서 지휘하는 사람이 바로 선관위 사무총장이다. 임총장은 "선관위의 권한과 능력.의지에 대한 세인의 평가에 신뢰만이 담긴 것은 아니다"는 지적에 정색을 하면서 "두고 봐라"고 장담했다. 본때를 보이겠다는 것이다.

-총선에 임하는 각오부터 말씀해 주시지요.

"선관위는 이번 선거에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공명선거를 만드느냐에 우리 선관위의 존폐가 걸려 있습니다. 사실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잘 해보려고 했습니다. 열심히 노력했고 잘된 선거라고 흡족해 했지요. 그런데 선거 직후 대선자금 수사가 시작되고 그 과정에서 숨겨졌던 내용들이 터져나오는 것을 보니 참담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어떤 일이 있어도 제대로 하겠다는 것이 선관위의 비장한 각오입니다. 이번엔 반드시 승부를 볼 것입니다."

-그런데 선관위 직원이 몇명입니까.

"2천명입니다. 여직원도 포함해서입니다. 1개 선거구를 5명 정도의 직원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4.15 총선 출마 예상 후보의 숫자가 대략 1천7백명에서 2천명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선관위 직원 1명이 후보 1명도 전담할 수 없는 형편에서 죽기살기로 당선되겠다고 뛰는 후보를 제대로 감시할 수 있겠습니까.

"문제는 돈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후보는 한 선거구에 7~8명이 나와도 돈 쓸 사람은 한 두명입니다. 이들을 집중 감시할 것입니다. 반드시 선거 초반에 거물급 몇 명을 적발해 본보기를 보이겠습니다. 여야고 중진이고 실세고 가리지 않을 겁니다. 혹시 평소 친하게 지내는 정치인이 있으면 조심하라고 하십시오. 선관위의 역량을 여기에 집중할 겁니다. 선거사범은 특성이 있습니다. 위에서 지령이 떨어져 전체가 움직인다는 점입니다. 일반범죄가 산발적으로 발생하는 것과 정반대입니다. 이를테면 조직범죄입니다. 그래서 잡아낼 수 있습니다. 별도로 지역구마다 50명 정도의 유급 감시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따로 자원봉사자들로 이뤄진 감시망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현장의 조그만 자생 조직까지 우리가 파악하고 있습니다. 벌써 직원들이 이런 데를 쫓아다니고 있습니다."

-돈을 감시하겠다고 했는데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십시오.

"솔직히 수입의 전모를 파악하긴 어렵습니다. 그래서 지출을 중점적으로 감시하려고 합니다. 이를 위해 내부에 새로운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이름은 '특수부'라고 붙였습니다. 여기 소속된 직원들은 정치자금과 선거비용만 추적하게 했습니다. 선거 때 가장 많이 돈을 쓰는 항목이 조직가동비, 특히 사조직입니다. 이번 선거에선 우리가 후보의 지출을 날짜별로 파악해 바로 바로 공개하려고 합니다. 공개를 거부하면 '공개거부 후보'라고 밝혀 유권자들이 판단 자료로 삼게 할 것입니다. 이 부분은 선관위 재량으로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법적으로 뒷받침해주면 더욱 좋지요. 후보들의 선거사무소에 선관위 직원이 상주 입회하는 방안도 검토 중입니다. 불법을 신고하는 감시단원이나 결정적인 실적을 올리는 직원에게는 그야말로 깜짝 놀랄 만한 포상을 하려고 합니다. 여기에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기획예산처와 협의 중입니다."

-돈을 받는 쪽에 대해선 어떻게 할 것입니까.

"받은 액수의 50배를 과태료로 물리기로 했습니다. 선관위가 곧바로 부과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여야가 이미 합의한 상태여서 본회의 통과만 남았습니다. 유권자가 관광버스 잘못 타면 돈 몇 백만원을 벌금으로 내는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갈비탕 5천원짜리 대접받으면 25만원 내야 하고, 부부가 함께 먹었으면 50만원입니다. 50배 과태료만으로도 받는 쪽은 상당 부분 커버될 것으로 우리는 기대합니다. 덧붙이자면 우리의 목적은 범법자 처벌이 아닙니다. 공정한 경쟁에 있습니다. 불법을 범한 사람이 얻은 이익만큼 표에서 손해보게 하는 겁니다. 불법은 나중에 사법처리하면 됩니다. 지금까지 보면 후보자들은 나중에 받을 불이익은 그리 중요하게 생각지 않더군요. 그래서 이번엔 현장에서 벌어지는 불법을 중지시키고 국민에게 바로 알려 유권자의 지지 철회로 이어지게 할 겁니다."

-선관위가 '강력한 심판'으로 나서면 중립 논란도 보다 거세질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야당 일각에선 선관위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권력 눈치를 보는 것 같다는 주장인데요.

"선관위가 중립을 지키지 않으면 가장 손해보는 곳이 어딥니까. 바로 선관위입니다. 이건 그동안의 경험이 쌓여 체득한 결과입니다. 선관위 인사에선 업무를 잘못 처리하는 직원은 봐줘도, 공정성에서 문제가 생긴 직원은 살아남지 못합니다. 다 반영됩니다. 오래 전 선관위가 정권의 입김에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때 정권이 선관위를 대우해주지도 않았습니다. 여당 편들고 출세한 선관위 사무총장 있으면 말해보라고 하고 싶습니다. 가장 힘이 센 정치권력과 정치권력이 맞부닥치는 현장이 선거입니다. 이럴 때 심판은 원칙을 지켜야 살 수 있습니다. 지난 16대 총선에서 선관위가 고발 또는 수사의뢰 형식으로 검찰에 넘긴 사례가 여당인 민주당 1백82건, 야당인 한나라당 48건이었어요. 여야가 8대 2였어요. 우리끼리는 '사람은 보지 말아라. 행동만 봐라'고 말합니다."

-중립과는 별도로 강력한 단속 의지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선관위 홈페이지라든지 이런 곳을 보면 "역대 선거에서 금품 살포와 관권 선거가 횡행했지만 선관위가 제대로 단속한 것이 있느냐"는 지적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요.

"우리가 몇 번 대선을 겪으면서, 또 선거 때마다 반드시 돈이 사후에 문제가 되는 것을 보고 '이대로는 안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지난 대선에서 돈선거 재발을 막으려면 선거공영제를 해야 한다고 우리는 강력히 주장했지요. 하지만 정치권이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결과는 차떼기니 뭐니 해서 또 돈이 문제가 됐잖아요. 이번 총선도 사전에 제도 정비를 안 해놓고 가면 엉망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지금 여야 간 선거법 개정 협상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인구상하한선 등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에요. 정치자금 문제를 반드시 고쳐야 합니다. 정치권이 소극적인데 이것은 마음만 먹으면 긴 시간이 필요없습니다. 하루면 돼요. 방안들은 이미 다 나와 있으니 결정만 하면 됩니다. 2월에 임시국회가 열리니 시간도 충분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고치자는 이야기입니까.

"우선 정치자금을 직접 주고 받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선관위를 통한다든지 제3의 기관을 거치도록 해야 투명화가 가능하죠. 이를 위반하면 무조건 1백만원 이상의 벌금을 부과해야 합니다. 1백만원 이상 벌금이면 피선거권이 박탈됩니다. 그러면 정치인 입장에선 그가 누구든 돈을 준 사람이 '돈줬다'고 폭로하면 정치생명이 끝납니다. 쉽게 못 받지요. 그런 다음 단일계좌만 사용해 입.출금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다른 통장에서 나간 돈이 발견되면 해당 정치인은 역시 피선거권을 박탈해야죠. 지금 선거법 개정 협상에선 단일통장까진 합의됐는데 처벌 부분이 쟁점으로 남아 있습니다."

-쟁점 현안에 대해 묻겠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의 선거 지원을 하겠다고 한 발언을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현행법에 대통령의 선거운동은 명확히 금지돼 있어요. 어떤 경우든 안 됩니다. 이를 허용하는 미국과는 다르죠. 다만 과거 대통령이 여당의 총재를 겸하고 있을 때 공천자 대회 등에 참석해 격려를 하는 것은 정당활동으로 간주됐습니다. 이런 것은 적법하겠죠. 결국 선관위로서는 어떤 자리에서, 누구를 상대로, 어떤 내용의 발언을 했는지를 구체적으로 검토해 판단해야 합니다."

-최근 일부 시민단체가 16대 총선에서의 낙선운동을 당선운동으로 바꿔 전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낙선운동과 당선운동은 다릅니까.

"낙선운동이든 당선운동이든 차이가 없지요. 선거법상 허용되는 것 외에는 다 불법입니다. 법은 선거운동 기간 중에만 선거운동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때도 법에 금지되지 않는 방법으로 해야 합니다."

-사이버 선거운동의 비중이 크게 늘고 있는데 이 같은 새로운 변화에 대한 대비책은 무엇입니까.

"선관위는 이번에 전부 선거 대비 체제로 개편했습니다. 새로 사이버 감시단도 편성했습니다. 감시단은 하루에 2천4백개 사이트에 들어가 2만건의 글을 검색합니다. 인신공격성 별명이나 욕설.악성 비방은 단어 검색을 해 바로 끌어다 즉각 조치하고 있습니다. 그날 그날 조치가 되기 때문에 그 글을 퍼서 다른 사이트에 옮기는 것도 막을 수 있습니다."

인터뷰 내내 임총장은 거듭 "선관위는 여당이건 야당이건 양쪽으로부터 욕을 먹게 돼 있다. 또 양쪽 모두로부터 욕을 먹어야 일을 잘한 것이다"고 말했다. 욕먹는 것을 겁내지 않겠다는 의지도 보였다. 선거 초반에 불법선거운동을 하다 걸린 후보들이 줄줄이 낙마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상당한 충격을 주면서 효과를 거둘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들 선관위를 지켜볼 일이다.

◇임좌순 사무총장=정통 선관위맨으로 말단부터 시작해 요직을 두루 거쳐 장관급인 사무총장 자리에 올랐다. 평소 지론이 '적극적 선거관리'다. 선거법 위반 행위에 대한 강력한 단속과 선거비용 실사 등을 주장해왔다. 1994년에 제정된 현행 통합선거법 탄생의 실무 주역이기도 하다.

▶49년 충남 온양 출생▶온양고▶건국대 법학과▶선관위 공보관▶선거국장▶강원 상임위원▶선거관리실장▶사무차장▶사무총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