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이 쓰는 가정이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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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자식도 품안에 있을 때 자식』이란 말이 요즘처럼 가슴에 와 닿은 적은 없었다. 얼마전 화창한 날씨의 토요일 오후 늦게 끝난 결혼식장에서 돌아오면서 집사람은 모처럼 즐거운「음모」를 꾸몄고, 나도 가담했다.
대학을 마치고 취직한 딸 혜선과 대학 3학년인 아들 동주, 그리고 대학에 갓 들어간 동민이가 모두 모일 것이니까 고기랑 야채를 준비해 전골을 해먹자는 것이다. 누가 오는 봄기운을 막으랴. 우리는 전골재료가 든 비닐봉지를 잔뜩 움켜쥐고 벨소리도 요란히 금의환향했는데 을씨년한 느낌 속에 딸년이 외출준비에 바쁜 모습이었다.
『애들은 없니?』
『응. 동주는 학군단 동기모임이라고 전화받고 나갔고』
『아니, 토요일밤에 무슨 소집이…』
『동민이는 고교 동창들과 저녁약속을 했대』
모녀의 대화에 내가 끼어들었다. 아니
『아니 머리에 피도 안마른 놈들이 저녁약속은 건방지게』
『너는 어찌된거니?』
『응. 선배언니랑 저녁 먹고 음악회 가기로 했어』
우리부부는 『그래 알았다. 일찍 들어와』를 합창하며 힘없이 주저앉고 말았다. 물러설 때의 지혜가 더 중요하다. 나는 화제를 바꾸었고 우리 둘은「자식무용론」을 심도있게 논하며 엉성한 저녁을 먹었다. 허탈감 속에서 식사 후 한참을 잤을까. 봄의 향내와 땀냄새, 그리고 맑고 산뜻한 내음이 섞여 어지럽다. 얼핏 눈을 떠보니 애들 셋이 침대 옆에 다가서서 있고 그 너머로 집사람이 무대 감독같은 폼으로 웃고있다.
괜히 싱거워져『다들 올라가라. 유언들을 일 있니!』했더니 애들은『와와』하고 웃더니 다들 한마디씩하고 자기들 방으로 사라졌다.
설친 잠에 몸을 뒤척이는데 집사람이 다가온다. 여자 고릴라같은 모양을 하더니 뒤로 돌며『나 등좀 긁어줘』한다. 갑자기 내 등도 가려위진다. 『알았어. 끝나면 내 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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