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뜨거운 약사·한의 영역다툼/노재현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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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약사가 의료인이 아닌걸 아십니까? 국민 여러분의 건강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약사 스스로 실토한 한약조제 사고!』
『약사는 한약 과학화의 주역입니다. 약국의 한약조제는 법에 보장된 기본권입니다. 진실을 왜곡하는 한의사측 기만술의 정체를 벗겨드립니다.』
최근 신문지상에 큼직하게 실린 광고문안이다. 얼핏 생각해도 한의사들과 약사들이 대판 싸우고 있는게 분명하다. 며칠전 저녁 TV에서 비슷한 옥신각신을 본 기억도 난다.
두 업계가 피를 말리며 싸우는 이유는 「국민 여러분의 보건」때문이다. 서로 상대방이 국민건강을 해칠 위험이 많다고 주장하고 있다. 약전이니 본초학이니 하는 말들이 낯설기만 한 국민들로서는 그저 겁날뿐이다. 보아하니 우리가 아플때 서로 보살피겠다고 나서는데,둘중 하나(또는 둘다)는 위험하다니. 1일의 국회보사위 간담회는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인다는 취지(장기욱위원장)」로 열렸다. 보사부장관과 민자당 의원들은 불참했지만 권경곤약사회장·허창회한의사협회장이 나란히 참석해 긴장감이 돌았다.
『정부는 한의학을 제도적으로 육성할 의지는 보이지 않고 국민건강 차원의 문제를 너무 소홀히 다루고 있습니다. 보사부가 약사위주로 편파행정을 하고 있어요』(한의사측).
『지난 60년에 대학을 졸업한 나도 대학에서 약용식물학·생약·본초학의 학점을 땄어요. 한약이 한의사의 영역에만 머무르는 시대는 이제 지났습니다』(약사측).
양측의 주장이 오가는 중에 급기야 『일부 한의원에서는 고졸학력 밖에 없는 사람이 임의로 조제하고 있다』는 발언도 나왔다. 의사인 양문희의원(민주)이 나서서 『그런식으로 말할 수 있느냐. 4년 밖에 배우지 않은 약사중 몇몇도 6년 배운 의사인양 청진기를 이용해 진료행위를 일삼고 있다』고 약사측에 면박을 주기도 했다. 같은 의사인 문창모의원(국민)은 『남들이 보면 돈벌이 때문에 싸우는줄 오해하겠다』고 혀를 차면서 선약이 있다고 일찌감치 자리를 떠버렸다. 이해찬의원(민주)이 『우선 쌍방이 비방부터 중지하세요. 국민만 불안해합니다. 곧 상임위를 열어 해결해봅시다』라고 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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