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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해외 명저를 찾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에드위드 핼릿 카(1892∼1982년)는 20년간의 직업외교관 생활후 1936년 학자의 길로 들어선 이래 수많은 명저를 남긴 20세기 최대의 국제정치학자·역사가로 꼽힌다.
그는 2O세기가 두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새로운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고 보고 변화의 요인과 조건을 파악하고 새로운 질서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려는 현실적 관심으로 일관했다.
『역사란 무엇인가』는 61년1월에서 3월까지 케임브리지대학의 트레벨리안 강좌에서 한 같은 제목의 강연을 책으로 옮긴 것이다.
이 강연은 곧바로 같은해에 영국BBC방송과 주간지인『리스너』를 통해 일반대중에게 널리 알려졌으며, 그해에 맥밀런 출판사에서 책으로 낸데이어 64년에는 펭귄출판사의 팰리컨북스 대중보급판으로 재출간됐다.
그의 책은 교양있는 일반인이 쉽게 이해할수 있는 입문서로 쓰였으면서도 전문학자들이 주저없이 인용하는 깊이있는 내용을 담고있다는 평을 들으며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그러면 그의 강연은 어째서 그토록 폭넓은 반향을 일으켰을까. 그 이유는 다름 아니라 2차대전 이후에 유럽인 특치 영국인들 사이에서「역사란 무엇인가」란 의문이 새롭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19세기는 유럽이 산업화를 바탕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더 나아가 세계를 지배한 시대였다.
그에 따라 그들은 역사 또한 끊임없이 진보를 이루어온 과정이며, 미래에도 진보가 계속되리라 여겼다.
역사학은 바로 이러한 진보를 입증해주는 학문이기 때문에 가치를 지닌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과거의 사실들 자체가 진보를 입증해 준다고 믿었기 때문에 이를 완전히 밝혀내기만 하면 역사학은 누구도 의문을 제기할수 없는 완전한 역사를 만들어 내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는 양차대전을 거치면서 크게 흔들리게 되었다.

<부신·회의론 대두>
1차대전 결과 미국이 새로운 강대국으로 모습을 드러냈으며 2차대전 이후에는 소련과 미국이 세계질서를 좌우하게 되고 유럽의 옛 식민지들이 독립하게 되었다.
유럽인은 이제 그들이 역사의 무대에서 주역의 자리를 빼앗겼음을 깨달았고, 따라서 역사를 진보의 과정이 아니라 오히려 쇠퇴의 과정으로 바라보는 경향을 띠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뒷걸음질을 치고 있는 역사를 연구할 가치가 과연 있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자라나게 되었다.
또한 사실의 권위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었다.
사실들이 진보가 아니라 퇴보를 드러낸다면 그러한 사실들의 의미는 어디에 있는가.
사실이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면 역사란 역사가가 사실들을 마음대로 선택하고 끌어모으는 까맞추기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카는『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와 역사학에 대한 이러한 회의와 불신을 극복하려고 시도한다.
첫째로, 역사학은 사실들을 밝히는 것만으로 이루어지는것이 아니고 역사가의 주관이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도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사실을 무시해서는 역사학이 성립되지 않는다.
역사란 현재의 역사가와 과거의 사실들 사이에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대화이며, 이 대화를 통해 역사학은 절대적으로 완전한 역사를 성취할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상대적으로 보다 완전한 역사를 향해 접근해 갈수는 있다.
둘째로, 역사가 진보의 과정이라는 것을 입증하지 못한다고 해서 역사학이 가치를 잃는것은 아니다.
역사학은 본질적으로 과거를 밝힘으로써 현재를 이해하고 그 현재를 출발점으로 미래를 조망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앞으로 나아갈 길을 비추어 준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갖고 있는 것이다.
셋째로, 역사가 진보의 과정으로 이루어져왔다고 믿어 오만한 만족감을 느끼는 것도 그릇된 일이지만, 역사가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고 여겨 좌절감에 빠지는 것도 마찬가지로 그릇된 일이다. 카의 말을 빌리면『미래에 계속해서 진보를 이루어 나갈수 있으리란 믿음을 잃어버린 사회는 과거에 그 사회가 이루어낸 진보에 대해서도 관심을 두지 않게묄』이며, 따라서 중요한 것은 어려움에 직면하더라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행동에 뛰어듦으로써 우리 스스로가 역사를 진보의 과정으로 만드는 일이다.

<역사학발전과 상통>
요컨대 카는 역사학이 완전한 역사를 성취하지 못한다고해서, 역사가 진보의 과정임이 입증되지 못한다고 해서, 그리고 현재에 크나큰 어려움이 나타났다고 해서 결코 제자리에 주저앉아 넋두리나 해서는 안되며 오히려 그럴수록 미래를 지향하는 적극적인 사고와 행동이 필요하다고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카의 주장은 역사학이 발전해온 과정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었다. 19세기에는 진보에 대한 신념을 바탕으로 애덤 스미스가「보이지 않는 손」과 같이 역사학의 수많은 전문분야를 통합시켜 주고 모든 민족의 역사를 하나의 세계사로 조화시켜주는 어떤 힘이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2O세기로 들어오면서 이러한 믿음은 커다란 상처를 입게 되었다.
인류는 더 이상 조화를 이루면서 진보해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의 이익을 위해 서로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그와 더불어 역사학의 여러분야들이 저절로 통합되는 것도 아니고 「프랑스 사람과 영국 사람, 그리고 독일 사람과 네덜란드 사람을 다같이 만족시킬수 있는」역사서술이 가능한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그 결과 각국의 역사가들은 상대주의에 빠져 제각기 자기나라의 이익을 위한 역사를 서술하게 되었고,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상대주의적 풍조에 실망한 사람들은 역사무용논에 빠져들거나 또는 더욱더 세밀한 사실의 탐색으로 도피해갔으며, 이로써 역사학의 의미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2차세계대전의 비극적인 결과는 이러한 현상에 대한 반성을 불러일으켰다.
상대주의적 역사관을 극복하기 위하여 역사학을 보다 과학적인 학문으로 만들고, 사실들의 혼돈을 물리치기 위하여 삶의 보다 근본적인 요소들을 기반으로 종합적인 문화사를 이루어내며, 역사의 의미를 되찾기 위하여 세계사에 대한 새로운 관념을 형성해 내려는 노력이 기울여졌다.
오늘날까지도 계속 진행되고 있는 새로운 역사학을 향한 이러한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은 바로 50년대 중엽인데 카는 바로 그 움직임을 대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카의『역사란 무엇인가』는 그의 강연이 있고나서 불과 5년뒤인 66년 길현모선생의 번역으로 처음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다.
그 뒤로 이 책은 매우 커다란 메아리를 불러일으켜 대학생과 지식인들이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으로 여겨졌다.

<이연규·경성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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