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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균으로 『뇌-혈액장벽』허문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지금까지 의학계의 숙제로 남아있던 혈액-뇌장벽을 허물기 위한 노력이 뇌막염을 일으키는 세균들을 이용해 새롭게 시도되고 있다고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지 최신호가 밝혔다.
뇌조직에 분포하는 혈관벽에는「혈액-뇌장벽」이란 특별한 구조가 있어 인체내 다른 혈관과는 달리 산소와 포도당등 뇌세포의 생존에 꼭 필요한 뭍질만 통과가 가능해 가장 중요한 장기답게 뇌를 보호하고있다·
그러나 뇌종양이나 세균감염의 경우 이를 없앨 수 있는 훌륭한 약물들이 이미 개발됐음에도 이 장벽때문에 오히려 약물들이 뇌속의 병변으로 전달되지 못해 이들 환자의 치료에 말 그대로 장벽이 되어왔다.
혈액-뇌 장벽은 뇌혈관벽을 구성하는 내피세포들이 서로 치밀하게 짜여있는 특수한 구조로분자량이 1백80에 불과한 포도당도 겨우 선택적으로 뇌조직안으로 운반될 수 있는 정도.
그런데 뇌막염을 일으키는 몇몇 세균들은 그 자체로 수백만 이상의 분자량을 가진 거대 단백질덩어리임에도 어떻게 아무 말썽없이 은밀히 잠입할 수 있을까.
미국 록팰러대 감염질환연구소장 앨런 튜마넨여사는 이들 세균의 세포벽을 특수한 효소를 이용해 잘게 자른 다음 성분별로 분류, 토끼에 주사한 후 다음 혈액-뇌장벽이 열리는가를 보는 실험을 통해 이들 중 글리코펩티드란 물질이 바로 굳게 닫힌 장벽을 여는 중요한 열쇠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만일 이 물질을 이용해 인위적으로 혈액·뇌장벽의 문을 자유로이 여닫을 수 있는 방법이 개발된다면 뇌 병변으로의 각종 약물투입이 가능하게돼 뇌질환 치료에 새로운 계기가 마련될 것이라는 것이다.
한편 튜마넨소장은 죽은 세균도 살아있는 세균과 똑같이 뇌막염 증상을 일으킨다는 실험결과에서 지금까지 의학계에서 해왔던 페니실린계열의 항생제로 세균을 죽이는 치료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밝혔다.
즉 죽은 세균조각들에 대해 인체면역기관이 과민반응해 이들을 공격하려고 백혈구등이 몰려와 염증을 일으키며 이 과정에서 정상적으로 유지돼야할 혈액-뇌 장벽이 파괴돼 치료를 오히려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튜마넨소장이 제시한 새로운 치료법은 항생제투여와 더불어 면역억제책으로 백혈구 유입을 억제할 수 있는 항체(anti-CD18)를 같이 투여하는 것으로 실제로 동물실험에서 1백% 완치율을 보였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세균성 뇌막염은 미국에서만 주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해 5만명 이상이 감염되며 치료효과가 좋지않아 이들중 3분의 1이 사망하고 생존자들도 절반이상이 귀가 먼다거나 사지마비가 오는등 후유증에 시달려야한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는 질병이다.
복어독(테트로도톡신)이나 인디언들의 화살독인 큐라레가 신경근육생리의 규명에 큰 도움을 주었듯 지금까지 숱하게 많은 사람들을 괴롭혀 온 한마리의 세균을 통해 이제껏 풀지못한 현대의학의 수수께끼를 해결했다는 점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양혜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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