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행감찰(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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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리 민족의 영원한 고전 『춘향전』이 주는 감동과 묘미는 이몽룡이 암행어사가 되어 남원에 출두하는 대목에 있다. 민족적인 정서로 보면 권선징악의 한 전형이며,소설적인 구조로 보면 극적인 반전인 셈이다.
『춘향전』을 서구의 고전 『오디세이』와 비교한 몇몇 국문학자들의 견해가 재미있다. 오디세우스장군의 아내인 페넬로프가 악한들의 유혹과 협박을 물리치고 정절을 지킨다는 내용이나,위기직전에 오디세우스장군이 나타나 아내를 구하고 상봉한다는 내용은 『춘향전』과 거의 비슷하지만 오디세우스가 무력으로 악한을 퇴치하는데 비해 이몽룡은 변사또의 악을 칼로 무찌르는 것이 아니라 붓으로 친다는데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견해는 이몽룡이 변사또의 잔칫자리에서 「금준미주 천인혈…」(금동이에 아름다운 술은 만백성의 피요…)이라는 내용의 시를 읊었다는데서 연유하고 있지만 칼을 쓸 때의 목적이 아무리 선이라도 그 방법 자체가 악이 된다는 관점에서 이 작품에 또다른 가치관을 부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조선조의 암행어사들이 절대군주 체제하에서 왕으로부터 절대적인 권력을 위임받았음을 감안한다면 이몽룡이 무력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악을 평정할 수 있었던 배경은 암행어사제도와 관련한 하나의 에피소드일뿐 그 자체가 「힘」이나 「권력」과 무관하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특정한 지역에 파견된 조선조의 암행어사들은 적어도 그 지방에서는 절대권력을 휘둘렀고,그 전횡의 폐해가 여러차례 물의를 빚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영조때의 박문수처럼 명어사도 있기는 했지만 「절대권력은 절대부패를 낳는다」는 원리는 암행어사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번주부터 비리가 많이 발생하고 있는 분야에 대해 실지감사를 시작하기로한 감사원은 특히 최근 확대 개편된 특별감찰국으로 하여금 공직자들에 대한 암행감찰 활동을 강화할 방침이라고 한다. 「암행」이라는 표현이 신선한 느낌을 주기보다는 어쩐지 어둡고 음산한 느낌을 준다. 기우일는지는 모르지만 암행이 암행을 낳는 「암행의 악순환」 현상도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다. 「암행」이 만능이 되는 사회를 경계해야 한다.<정규웅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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