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본 유출 태풍' 촉각 세운 양 캠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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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놀라운 일"
언급 자제한 이명박

이명박 후보 친인척의 주민등록초본 불법 발급 사건이 한나라당의 새로운 경선 변수로 떠올랐다. 경선에 참여할 23만1600명 당원의 마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이명박.박근혜 후보 진영의 표정은 엇갈렸다. 당장은 이 후보 측 '맑음', 박 후보 측 '흐림'이다. 검찰의 수사 진행과 향후 여론의 흐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모습이다. 이런 가운데 16일 두 후보는 숨 가쁜 하루를 보냈다.

이명박 한나라당 경선 후보가 16일 서울 여의도 캠프에서 이 후보 지지를 선언한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左)와 만세를 부르고 있다.[사진=강정현 기자]


주민등록초본 불법 유출 논란에 대해 16일 이명박 후보는 말을 아꼈다. 그는 "믿기지 않는다. 좀 더 지켜보자"라거나 "(박 후보 캠프 개입이 사실이라면)정말 놀라운 일"이라고 했다.

'검찰 수사에서 박 후보 측이 배후로 드러나면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라는 기자들의 질문엔 "다음 문제는 다음에 생각하자. 뭘 미리 당겨서 생각하고 그러느냐"며 입을 닫았다.

이 후보 캠프의 박형준 대변인은 "철저한 수사를 통해 실체적 진실이 밝혀지길 바란다"고 검찰에 촉구했다. 박 캠프에 대해선 "섣불리 '관계가 없다'는 결론을 미리 정해 놓고, 꼬리 자르기를 해선 안 된다"며 "박 후보 측이 스스로 진실을 고백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후보 측이 주목하는 것은 홍윤식씨가 건네받은 주민등록초본이 열린우리당 김혁규 의원 측에 전달됐는지다.

장광근 캠프 대변인은 "만약 같은 서류임이 드러난다면 야당이 집권세력과 연계해 야합 공작을 벌였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운 중차대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캠프 측은 "홍씨의 초본 자료가 모 일간지 기자를 거쳐 범여권 측에 흘러 들어갔을 가능성이 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박 후보 지지자가 수유동에서 초본 발급 시도"=박 후보 지지자인 최모씨가 지난달 4일 수유6동 사무소에서 이 후보 주민등록초본을 떼려고 시도했던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2005년 8월까지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에서 활동했지만 현재는 단순 지지자"라고 밝힌 최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 후보의 위장전입과 부동산 투기 여부를 알아보려고 이 후보의 주민등록번호를 중학교 동창생인 동사무소 직원 김모씨에게 알려주고 초본을 떼 보라고 했다"며 "그러나 김씨가 '왜 이명박씨 것을 떼려고 하느냐. 문제될 수 있다. 안 된다'고 해 초본을 받지는 못했다"고 설명했다.

최씨는 또 "최씨가 이 후보의 주민등록번호를 한나라당 검증위에서 알아냈다"는 한 방송사의 보도와 관련,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했다. 박형준 대변인은 "네거티브에 집착한 박 후보 측 선거전략이 결국 화를 부르고 있다"고 논평했다.

또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이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이 전 총재는 "무너진 국가의 권위와 정체성을 회복하고, 우리나라를 선진국에 진입시킬 수 있는 사람은 이명박 후보다. 이 후보가 시대정신"이라고 말했다.

서승욱 기자

박근혜 경선후보가 16일 국회에서 열린 자서전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활짝 웃으며 박수치고 있다. 왼쪽부터 박 후보, 남덕우 전 총리, 홍사덕 선대위원장. [사진=오종택 기자]


"정도를 지켜 달라"
자숙 당부한 박근혜

한나라당 박근혜 후보 캠프는 16일 이명박 후보 친인척의 주민등록초본 부정 발급 사건에 캠프와 관련된 홍윤식씨가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자 사태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캠프는 자숙하는 분위기였다.

박 후보는 "왜 자꾸 이런 일이 벌어지느냐. 캠프 구성원이 많아 통제가 안 된다 하더라도 정도(正道)로 가야지, 이런 식으로 하면 되겠느냐"고 말했다고 김재원 대변인이 전했다. 박 후보는 이어 "기본적으로 검증은 당 검증위에서 해야 하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굉장히 잘못된 것"이라며 "앞으로 정말 정도를 지켜 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일각에선 불만의 목소리도 나왔다. 캠프 한 관계자는 "이 후보 측은 '한 건 잡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오히려 우리 캠프엔 약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후보 측이 수세에 몰리고 있는 검증 국면을 전환하기 위해 과잉 공격을 하는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유승민 의원은 "이번 사건은 어찌됐든 잘못된 일이지만 큰 사안으로는 번지지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검찰의 수사 내용을 잘 지켜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김무성 조직총괄본부장도 "어떻든 홍씨가 연루된 것은 잘못된 일"이라면서도 "홍씨의 해명을 보면 큰일로 번질 사안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캠프는 이날 일부 언론에 보도된 이 후보 관련 부동산 의혹에 대해 "당 검증위에서 철저하게 검증하는 것이 정권 교체에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 캠프의 견해"라는 원칙적 입장만 내놓은 채 특별한 공세를 펼치지 않았다.

이날 오전 박 후보는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의 출판기념회를 했다. 3000여 명이 참석했다. 좌석과 통로는 물론 의원회관 로비까지 축하객들로 북적였다. 이들은 박 후보가 입장할 때 "박근혜, 박근혜"를 연호했다. 박 후보가 대학 축제 당시 가장행렬에서 과 깃발을 들고 가는 사진과 10.26 직후 고(故)박정희 대통령의 피 묻은 와이셔츠를 빨고 있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 소개됐다.

박 후보는 인사말에서 "지난해 지방선거 유세 과정에서 테러로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지난날을 담담하게 기록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며 "나에게 주어진 사명은 바로 새로운 희망을 만드는 일이며 나는 그것을 피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행사에는 강재섭 대표 등 의원 40여 명이 참석했다. 이 후보 측의 박희태 선대위원장, 주호영 후보 비서실장 등도 모습을 보였다.

신용호.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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