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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쇠똥'세례 당한 소비자 선택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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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아니, 한우 살 돈 없는 사람은 쇠고기를 먹지도 말란 말이에요? 상도동에서 버스 타고 왔는데…." 13일 서울 봉래동 롯데마트 서울역점에서 만난 주부 이영숙(60)씨는 분통을 터뜨렸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시위로 미국산 쇠고기를 당분간 팔지 못한다는 점원의 설명을 듣고서다.

13일 국내 대형 할인점에 첫선을 보인 미국산 쇠고기. 물량이 본격적으로 풀린 사흘간 확인한 건 값싼 쇠고기에 대한 소비자의 욕구 분출이었다. 15일 현재 시위대의 실력 저지로 미국산 쇠고기 판매를 일시 중단한 곳은 서울의 서울역.영등포점과 경기도 안성점, 광주 상무.월드컵점, 충북 청주.충주점 등 7곳. 롯데마트엔 "미국산 쇠고기를 왜 안 파느냐"는 항의 전화가 하루 수백 통씩 빗발쳤다. 롯데마트 측은 "어쩔 수 없으니 양해해 달라"고 사정해야 했다. 몸싸움을 벌이다 사고라도 나면 전체 매장의 영업에 지장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했다.

조용했던 나머지 46곳 매장에선 미국산 쇠고기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13일 이후 사흘 동안 19.5t, 모두 4억5000만원어치가 팔렸다. 지난주 같은 기간 수입육 판매액의 세 배였다. 첫 인도분 40t 가운데 냉장육 10t은 이틀 만에 동났다. 냉동육도 100g에 1350원 하는 윗등심이나 3250원인 꽃갈비살은 여러 매장에서 품절됐다. 대체로 한우의 절반 값, 호주산보다 25%가량 저렴했다. 영등포점에서 꽃갈비살 300g을 구입한 손석천(73.등촌동)씨 부부는 "손주한테 오랜만에 쇠고기 한껏 먹여 보자"고 좋아했다. 미국산 쇠고기의 등장으로 그동안 수입 쇠고기 시장을 거의 독점해 온 호주산 쇠고기 값도 덩달아 내려 소비자의 선택 폭도 넓어졌다.

평소 같으면 경쟁사의 성공에 금세 맞불을 놨을 이마트.홈플러스가 우물쭈물하고 있다. 대박도 좋지만 공연히 무력 시위를 불러들일까 겁나서다. 이마트 관계자는 "우리도 수입 물량은 진작에 확보해 놨지만 롯데마트 같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 분위기를 보고 있다"고 털어놨다.

우리 축산 농가를 염려해 미국산 쇠고기가 싸지만 사먹지 않겠다는 여론이 있다. 광우병 시비로 미국산이 여전히 거북하다는 소비자도 적잖다. 그런 자유가 있듯이 3년7개월 만에 좀 더 값싼 쇠고기를 살 기회를 만난 소비자들의 선택의 자유를 쇠똥 투척으로 빼앗아서는 곤란하다.

임미진 산업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