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가도가도 평원은 끝나지 않고…-울란바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8호 07면

테렐지 국립 공원의 초원 풍경

Ulaanbaatar 울란바토르

22일 오후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벗어나 몽골 횡단철도로 접어들었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로 가는 길이다. 시베리아와는 풍경이 사뭇 다르다. 달려도 달려도 끝없는 평원이다. 군데군데 소떼가 보일 듯 말 듯 낮게 자란 풀을 뜯는 모습이 애처로워 보인다. 아직 풀이 제대로 자라지 않은 듯했다. 농사를 짓는 곳은 찾아볼 수 없고 대부분이 맨땅이다. 가이드에게 “이렇게 넓은 땅을 왜 버려두느냐”고 물었더니 “혹한 때문에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기간이 겨우 90일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란다.
러시아의 국경도시 나우쉬키에 도착했다. 국경수비대원들이 객실을 돌며 여권과 비자를 검사하고 일일이 얼굴과 대조한다. 옛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의 후신인 연방보안국(FSB) 소속 요원들이다. 러시아의 국경 수비는 이들이 맡는다. 투어 리더 타티야나는 “국경에선 사진 촬영은 절대 금물이고 방에서 나가지도 말라”고 단단히 주의를 줬다. 잔뜩 긴장하고 있는데 다행히 우리 객실엔 여군이 들어왔다. 역시 표정이 굳어 있었으나 러시아 말로 농담을 건네자 금세 환하게 웃는다. 서류 검사도 별일 없이 끝났다.

다시 2시간쯤을 더 달리자 몽골 국경 도시 수헤바토르가 나온다. 역시 몽골 국경수비대원들이 서류를 검사했지만 분위기는 러시아보다 훨씬 부드럽다. 국경 지역을 모두 통과하자 어둠이 내려앉았다.
다음날 아침 울란바토르에 도착했다.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몽골에서 가장 큰 라마불교 사원인 ‘간단 사원’을 찾아갔다. 간단은 ‘위대하고 성스러운 곳’이란 의미. 19세기 중반에 세워졌는데 1924년 몽골이 사회주의 체제를 채택하면서 800여 개의 불교 사원을 정리할 때도 운 좋게 살아남았다. 층층이 올려 쌓은 지붕과 요란한 금도금 때문인지 차라기 절이라기보다 궁궐 같은 느낌이다. 5000여 명의 승려가 수도를 하고 있다고 한다. 관광객들이 쉴 새 없이 들어오는 데도 붉은 승복을 입은 승려들은 관심 없다는 듯 독경에 여념이 없다.

라마 불교계의 간단 사원

인근 자이산은 사회주의 혁명 기념탑이 있는 전망대다. 기념탑은 수없이 많은 계단을 걸어 한참을 올라간 높은 언덕에 자리 잡고 있었다.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기념탑 뒤쪽엔 둥글게 쌓아올린 돌무덤 위에 파랑·빨강·노랑 헝겊을 매단 나무막대가 서 있다. 우리의 서낭당이다. 이데올로기와 종교가 어색하게 뒤섞인 풍경이다.
시내로 들어와서는 수흐바타르 광장을 찾았다. 수흐바타르는 중국으로부터 몽골을 독립시키고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시킨 인물로 몽골에서는 칭기즈칸 다음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1989년 공산주의를 무너뜨린 시위가 처음 시작된 곳도 이곳이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광장 주변으론 공공기관들이 도열했다.

정부 청사 앞에는 칭기즈칸이 옥좌에 앉아 있는 모습의 거대한 동상과 궁전 모양의 현대식 구조물을 세우는 공사가 한창이다. 과거의 영화를 되찾고 싶은 몽골인들의 꿈을 담은 구조물이라고 한다. 몽골은 국토의 30% 이상이 사막일 정도로 척박한 나라다. ‘신이 버린 땅’으로 불릴 정도다. 우리나라로 불어오는 황사도 몽골 사막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정작 몽골인들은 이 땅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자부한다.
울란바토르 시내는 지저분하고 시끄러워 별로 정이 가지 않았다. 사회주의 시절에 만든 콘크리트 건물들이 대부분 그대로 남아있었다. 도로는 시커먼 매연을 내뿜는 중고차들로 북적댄다. 무슨 학원, 무슨 태권도 등 우리말 간판을 그대로 붙이고 다니는 한국차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행인의 차림새도 중고차처럼 어수선하다.

우리가 상상했던 초원의 땅 몽골은 울란바토르에서 동북쪽으로 80㎞ 정도 떨어진 테렐지 국립공원에서나 만날 수 있었다. 바위산이 군데군데 솟은 광활한 초원에 천막 가옥인 ‘게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촌락. 말을 타고 소떼를 모는 검은 얼굴의 몽골인들. 사진 그대로였다. 게르촌에 들러 저녁을 먹고 말도 탔다. 하루를 묵으며 별이 쏟아진다는 초원의 밤을 만끽하고 싶었다. 긴 여정이지만 일정은 촉박했다. 어둠이 깔릴 무렵 버스에 올라 울란바토르 역으로 향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