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유서(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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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일찍이 그리스의 철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사회에 있어서의 부를 「자연의 부」와 「인공의 부」로 구분했다. 「자연의 부」는 의식주와 관련된 소비재나 그 소비재를 생산하는 수단으로 간주했고 「인공의 부」는 돈 그 자체라고 본 것이다. 돈은 교환수단으로서 혹은 실재하는 부의 가치척도로서,그 효용성은 오직 수단으로서만 그친다는 생각이다. 구매력을 의미하는 오늘날의 임금도 아리스토텔레스의 그같은 구분을 현대적으로 적용한 것이라고 한다. 로비슨 크루소처럼 절해고도에서 혼자 살고있으면 모르되 사회생활을 해나가는데 있어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돈이다. 돈이 없으면 우선 의식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말은 뒤집으면 죽음의 길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돈은 적어도 그 당사자에게는 효용가치를 상실한다는 뜻이다. 불교에서는 「공수래 공수거」라 하여 사람의 한평생 삶이란 허무함을 일깨우고 있지만 돈이란 항상 인간에게 쓸데없는 허욕을 갖게하게 마련이다. 자신의 유산이 보람있는 일에 쓰이게 하려고 돈을 모으는 사람도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개의 경우는 맹목적으로 돈에 탐닉하다가 한평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혹 어떤 사람들은 자손들을 잘 살게 하려는 목적으로 자신은 근검절약 하면서도 돈에 집착한다. 억척스럽게 돈을 모아 엄청난 유산을 남겼으니 걱정없이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다고 자위할는지는 모르지만 그로써 돈의 효용가치를 최대한 살렸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자손들에게는 적당히 살만큼만 남겨주고 그밖의 모든 유산을 불우한 사람들에게 희사하면서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도 간혹 있다.
지난달 11일 신병을 비관해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한 위안부 출신의 40대 여성도 1억4천만원 상당의 유산을 고등학교 장학기금으로 기탁한다는 유서를 남겼다. 최악의 삶을 살아온 그로서는 그것이 최대의 마지막 보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뒤늦게 17세의 아들이 나타나 유서의 법적 효력여부가 문제되고 법정으로까지 비화할 모양이다. 한 여인의 한이 가득 담겨있는 유산을 놓고 당사자의 본뜻과는 관계없이 시비를 벌여야 하는 세태가 각박하게 느껴진다.<정규웅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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