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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쇠고기 판매 첫날 생긴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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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롯데마트의 전국 대형 할인점에서 13일 미국산 쇠고기 판매가 3년7개월 만에 재개됐지만 일부 시민단체와 농민들의 반대 시위로 홍역을 치렀다.

광주의 한 매장에서는 반자유무역협정(FTA) 단체 회원들이 판매대에 쇠똥을 뿌리는 소동 끝에 점장으로부터 '미국산 쇠고기를 팔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서울의 한 점포에서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의 시식 행사가 시위로 취소되기도 했다. 롯데마트는 이날 미국산 쇠고기 40t을 전국 53곳 매장에 풀었지만 그중 서울역점 등 5군데 매장이 시위대에 밀려 판매를 중단했다. 반면 소비자들의 반응은 뜨거워 쇠고기의 인기 부위가 일찌감치 품절됐다.

◆'미국산은 안 된다' 쇠똥 쏟아=이날 오전 10시 광주광역시 치평동의 롯데마트 상무점은 문을 열자마자 쇠똥 세례를 받았다.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의 광주.전남 운동본부 소속 회원 50여 명은 세숫대야에 담아온 쇠똥을 정육 판매대 위에 퍼부은 뒤 농성을 벌였다. 이들의 실력행사로 고용석 점장은 오전 11시30분 '미국산 쇠고기를 팔지 않겠으며, 본사와 상의해 후속조치를 마련하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써주고 농성을 풀게 했다. 이 단체는 광주시내 다른 지점들도 차례로 찾아가 같은 내용의 각서를 받아낼 방침이다.

서울 봉래동 롯데마트 서울역점도 문을 열자마자 범국본 회원과 광우병국민감시단 등 80여 명이 몰려와 농성을 하는 바람에 판매가 중단됐다. 이들은 구입한 미국산 쇠고기를 바닥에 던지고 진열대 앞까지 진출해 구호를 외치다 출동한 경찰의 경고로 한 시간 만에 물러났다. 이 과정에서 경찰과 시위대의 몸싸움으로 진열대 유리가 깨지기도 했다.

범국본 측은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았고, 검역 과정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시위로 이날 오후 서울역점을 찾아 시식행사를 벌이려던 버시바우 대사의 일정도 취소됐다. 판매가 중단되자 한 방문객은 "한우가 비싸서 못 먹는 판에 값싼 쇠고기를 사먹을 권리도 없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날 판매가 중단된 곳은 서울역점, 광주 상무.월드컵점과 충북 청주.충주점, 경기도 안성점 등 6곳이었다.

◆소비자 반응은 뜨거워=정상 판매가 이뤄진 다른 매장에선 평소 수입 쇠고기 판매량의 평균 네 배에 달하는 매출을 올렸다. 이날 전국 롯데마트에서 팔린 미국산 쇠고기는 5t, 1억3000만원어치였다. 100g당 1550원에 나온 윗등심은 수도권 15곳 매장에서 품절됐다. 100g 당 3950원에 내놓은 초이스급 꽃갈비살은 비슷한 등급(1등급) 한우의 절반 값, 호주산보다는 20% 정도 싼 가격이다.

서울 당산동의 영등포점을 찾은 박계자(62.양평동) 주부는 "한우보다 부드러운 맛은 덜하지만 값이 절반도 안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만족스럽다" 며 꽃갈비살 300g을 사갔다. 일부 소비자는 "광우병 이야기가 있어 찜찜하다"며 한우나 호주산 쇠고기를 찾기도 했다.

롯데마트 측은 "시민단체의 반발을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과격하다"면서 "그러나 소비자 반응이 좋아 냉장육 30t을 추가로 들여와 팔겠다"고 말했다.

소 분뇨를 뿌릴 정도로 거센 시위가 한.미 FTA 비준에 악영향을 미칠 소지가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한양대 나성린(경제학) 교수는 "미국산 쇠고기 판매는 한.미 FTA 타결 이후 소비자들이 접하는 사실상의 첫 변화라는 점에서 의회를 중심으로 미국 여론이 주목하고 있다"며 "정부가 불법 과격 시위에 손을 놓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임미진.한은화 기자, 광주=천창환 기자, 장용욱 대학생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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