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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선이면 납득할까”고심/개각폭 싸고 진통겪는 청와대 주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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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잡음 계속되면 개혁추진 타격”/외교·통일 부문 국적시비 난처
청와대는 8일 오전 9시로 예정했던 부분 개각발표를 오후 3시로 미루면서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조치」를 만들기에 부심했다.
이는 이번 개각에도 불구,인사잡음이 계속된다면 새정부의 개혁추진이 정말 어려워질 것이라는 절박한 판단에서 비롯한다.
박관용비서실장 등 청와대 핵심참모들은 이에 따라 8일 오전까지도 장관급인사의 신상명세서와 조사보고서를 정밀검토하고 그 결과를 김영삼대통령에게 보고하는 등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
○…청와대가 막바지까지 경질여부를 놓고 고심한 것은 허재영건설장관.
인사파문과 관련해 관계기관을 통해 잡음해당 인사들을 내사한 결과 부인의 위장전입에 의한 농지매입건의 김덕 안기부장이나 용팔이 사건과 관련설의 이해구 내무장관 등은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나 「양해」쪽으로 결론이 났다는 것. 그러나 허 장관의 경우 재산이 20억원이 넘는 등 문제될 여지가 많기 때문.
정부가 먼저 허 장관의 문제를 제기하는게 탐탁지 않다는 의견이 우세하나 정부의 단호한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어 허 장관 처리문제는 끝까지 곡절을 겪었는데 결국 경질로 낙착.
○…청와대는 경질대상 각료후임은 「청렴」을 우선하되 새내각의 「행정능력」시비를 떨치기 위해 유관인사를 집중 점검.
법무장관 후보로 거론된 이명희 전 대법관은 이같은 원칙에다 법조내부의 신망까지 감안돼 유력후보가 됐으나 차제에 검찰인사 숨통을 트는 것도 필요하다는 지적에 따라 김두희 검찰총장과 동기생인 김경회 부산고검장이 강력히 대두.
김 총장은 임기 2년제 총장으로 임명된지 2개월 남짓하므로 그의 기용은 총장임기제 정신에도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김 총장으로 결론.
보사부장관 후임에는 김영삼대통령의 내각내 3명의 여성장관 유지라는 원칙고수에 따라 보사 업무관련이 있는 김모임 연대간호대학장·박정호 간호협회장·주양자의원 등이 검토대상.
그러나 주 의원은 의료보험공단이사장 시절부터의 뒷소리때문에 제외됐는데 굳이 전문성에 집착할 이유도 없다는 의견에 따라 송정숙 서울신문 논설위원이 뒤늦게 장관직을 따냈다.
서울시장 후임으로는 이원종 전 충북지사가 서울시 요직을 두루 거친 경험과 복마전인 서울시 출신으로 청빈도가 공인돼 있는데다 충북지사 시절 도민들의 호응이 참작되고 있다.
○…김영삼대통령과 주변참모들은 이번 인사파문 뒤에 기득권보호세력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는 의심을 떨쳐버리지 않고 있다.
다음은 청와대 당국자들이 밝힌 「혐의」에 대한 확인결과인데 설득력이 약한 대목도 적지 않아 여론의 반응이 주목되고 있다.
○…김덕 안기부장의 부인이 위장전입으로 샀다고 지적됐던 땅은 돈을 빌려갔던 김 부장의 대자(김 부장은 가톨릭신도)로부터 부채상환 형식으로 샀다는 것. 김 부장은 이 땅이 문제되자 가톨릭장애자복지시설에 기증하기로 하고 계약을 마쳤다.
또 김 부장의 누나와 처남이 공동명의로 구입했다는 제주도 땅은 남편과 사별한 누나가 유산관리방법을 찾자 김 부장이 모은행 이사였던 처남을 소개시켜 주었다는 것이다.
○…김정원 안기부2차장의 한국국적 소멸부분은 김 차장이 외국에서 공부하고 외국여자와 결혼해 살다보니 그 과정에서 한국국적이 소멸될 수도 있었을 것이며 지금은 국적이 회복된 상태여서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통일민주당 창당방해사건 당시 안기부1차장(국내담당)이어서 관련혐의를 받고 있는 이해구 내무장관의 경우 피의자인 이택희·이택돈씨가 직접 장세동 전 안기부장과 「거래」했다고 진술하고 있고 안기부구조상 1차장이 주도적인 부분에서 소외됐을 수 있다는 것이다.
○…5촌이 인민군장성으로 6·25때 남침했다는 소문의 대상이 된 정종욱 외교안보수석은 5촌을 알지도 못하고 인민군에서 소령까지 근무했고 그 사람은 이미 80세가 넘은 고령이라는 것.
○…고위관리 재직시 뇌물을 받아 물러났다는 H모장관은 공직재직시절 공직자 자제분위기가 있었는데다 지방기관을 순회하며 골프를 치고 저녁향응을 받은 것으로 돼있다. 그러나 이 사람이 호남출신이라 호남인사들은 『TK였어도 문제가 됐겠느냐』며 불평을 터뜨리기도 했다는 것.
○…국영기업체 재직시 부정축재했다는 설이 따라붙는 L모장관은 이재에 밝아 일반공직자보다는 많은 수준인 20억원대의 재산을 모은 것뿐 부정·이권개입의 흔적은 없다는 것.
○…자녀가 미국국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한완상 통일부총리와 한승주 외무장관은 유학중 미국에서 태어난 자녀가 속지주의에 따라 아직 미국국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그것까지 문제삼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권영해국방장관에 대한 이권축재설은 조사결과 드러난 것이 없다. 그가 권력핵심줄기인 「하나회」회원도 아니면서 국방차관에까지 오른 것은 나름대로 자기관리를 했던 탓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청와대측은 비공식으로 이런 해명자료를 발표하면서 국민이 어느 정도 수긍할지와 또다른 후속폭로는 없을지 내심 걱정하는 눈치다.
특히 한완상 통일부총리·한승주 외무장관·김정원 안기부 2차장 등 대북·대외담당 국가요직 인사들이 정상참작이나 불가피한 사정을 모두 본인·자녀국적시비에 휘말려 있는 점을 걱정하고 있다.
청와대측은 신임장관들에 대한 문제제기가 구체적인 내용을 적시하고 있고 시점 등에 있어 체계적인 모습을 갖추었다는 점에서 「반신정부」세력의 조직적인 공세로 보고 있다.
관계자들은 배경에 대해 ▲신임장관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공작」차원으로 나타나 개인적 음해·고발로 이어지고 있고 ▲개인적 이해관계없이 수구세력이 개혁에 상처를 내려고 이곳저곳에 흘리는 것으로 파악. 한 고위정부관계자는 『장관수가 22명인데 명단발표 직후부터 10∼11명에 대한 나쁜 얘기가 쫙 퍼졌고 이 숫자가 늘지도 줄지도 않았다』고 지적하면서 『이는 어느 보이지 않는 얼굴들이 커튼뒤에서 조직적으로 까발리고 있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김현일·김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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