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제」못잖은 전문대/이렇게 달라져야 한다(문민시대 새교육:8)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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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기술시대 맞춰 특화교육 시급/실습시설·교수확충 서둘러야
국내에서는 흔히 「줄리어드 음대」라고 부르는 미국 뉴욕의 줄리어드 음악학교는 예비학교에서 박사코스까지 7개 과정으로,연주기술을 가르치는 일종의 기술학교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이곳은 「훌륭한 음악이론가」가 아닌 「훌륭한 연주가」를 키워냄으로써 세계가 공인하는 음악의 명문으로 자리잡았다.
80년이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미국의 2년제 깁스스쿨은 「비서학교의 명문」으로 불린다. 컴퓨터 교육을 필수로 타자·속기·구술·상업영어 등을 가르치는 깁스스쿨은 철저한 직업교육의 결과 졸업생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높은 임금에 1백% 취업을 자랑한다.
○선진국이 타산지석
국내에서도 비서학과의 개설이 늘고있지만 종합대학의 비서학과는 실무보다는 학벌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의 「기형아」인 셈이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학벌위주 사회인 일본만 해도 70년대 중반부터 대학진학률이 정지된 상태다.
동경대 등 소위 일류대는 지금도 여전히 과열 입시양상을 보이고는 있으나 이미 70년대부터 『시시한 대학 나와봐야 취업도 잘안돼 차라리 기술교육이 낫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대학을 가지않고 비정규학교인 전수학교(2년제)를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난 것이다.
한때는 대학에 가지못한 사람들의 「좌절집단」으로 취급받던 우리의 전문대학도 이제는 연세대·경북대·전남대·이화여대 등 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자신의 적성을 찾아 재입학하는 「역류현상」까지 나타날 정도로 인식이 차츰 변하고 있다.
○“이젠 창피하지 않다”
88학년도에 전문대 사상 처음으로 대학졸업자 3명이 입학한 이후 매년 10명이 넘는 대졸자들이 전문대의 문을 다시 두드리는 실정이다. 서울 동양공업전문대 사무자동학과에 다니고 있는 김현숙양(20)은 전문대학을 다니는 사실이 결코 부끄럽거나 창피하지 않다.
4년제 대학에 대한 미련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중간한 대학이나 학과를 나오면 취업이 보장되지 않는 현실을 잘 알고있는 김양의 눈에는 대학을 가기위해 재수·삼수를 하는 친구들의 축 늘어진 어깨가 오히려 측은(?)해 보이기까지 한다.
○첨단분야 취업긍지
『전·후기 대학입시에 모두 떨어져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전문대를 가는 학생이 아직 많긴 하지만 대학을 4년씩이나 다닐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에서 경제적 부담도 덜고 빨리 졸업하자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습니다. 물론 전문대 출신이 취업에 더 유리할 것이라는 생각도 있죠.』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입시학원가에서도 느낄 수 있다.
통상 입시철인 12월초가 돼야 개설되던 전문대반이 90년에는 6월초부터 생기더니 지난해부터는 아예 3월에 첫반이 개설되는 추세다.
전문대를 준비하는 학생들의 태도도 요즘은 스스럼 없이 자신의 뜻을 밝힐만큼 바뀌었고,전문대 출신들에 대한 기업체의 인식도 많이 달라져 90년 동양공전 기계설계학과를 졸업한 고광일씨(25)는 졸업과 동시에 럭키금성연구소에 입사,현재 최첨단분야인 설계작업 분야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월 80만원 이상의 봉급을 받고있다.
그러나 여전히 열악한 실습시설,현장경험 없는 교수들,학업에 뜻이 없는 학생들,전문대 졸업생을 고졸학력으로 간주하는 기업체 등의 문제는 시급히 풀어야 할 숙제며 전문적이고 특화된 기술교육으로의 확실한 방향전환이 필요하다.<손장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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