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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60년대엔 전축 다방 필수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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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요즘이야 학생들의 졸업·입학선물로 인기를 모을 만큼 대중화 됐지만 얼마 전만 해도 오디오는 보통사람에게는 거리가 먼 「부의 상징」이자 「사치」로 통했다.
우리나라 오디오산업이 자리잡은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오디오의 도입은 상당한 역사를 갖고 있다.
이 땅에 유성기가 첫선을 보인 것은 구한말 도굴로 유명한 프러시아의 오페르트가 아산만에서 지방관리들을 초청, 여흥을 벌이면서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후 1903년 미국 선교사인 호러스 앨런이 정부관리들을 초청, 유성기를 틀어주면서 이 「귀신들린 소리 통」은 조금씩 알려졌다.
일제시대 때 유성기는 장안의 몇 안 되는 다방이나 신식 귀족들에게 보급되면서 애환을 달래는 동무가 되기도 했다. 그 암울했던 시절, 문약한 지식인들에게는 다방이나 카페의 유성기에서 흘러나오는 『사의 찬미』 『황성옛터』니 하는 노래가 크나큰 위안이었다. 그러나 서민들은 유성기를 구경조차 하기 어려운 때였다.
해방이 되고 6·25동란까지 치른 50년대 중반부터는 유성기의 뒤를 이어 라디오에 레코드 플레이어를 얹은 전축이 나타났다. 청계천 주변에 자리잡은 전파상들이 미군 PX를 통해 흘러나온 중고 라디오를 뜯어 배터리용 레코드 플레이어를 부착한 사제 조립전축이 시중에 나돌았던 것이다.
동란의 아픔이 차츰 가실 무렵인 60년대 초반 들어서야 전축은 일반인에게 밀착되기 시작한다. 때마침 우후죽순으로 등장한 다방에 전축이 필수품처럼 비치되면서 음악에 취미를 붙인 멋쟁이 신세대들이 들락거렸다. 노래를 들으려고 전파상 앞 추운 거리에 쭈그리고 앉아 있어야하는 궁상을 면할 수 있게된 것이다. 고급 요정이나 술집에도 외제전축 하나쯤은 있어야 구색이 맞을 정도였다.
국내 오디오산업이 태동한 것도 바로 이즈음. 전기기구 상을 하던 정봉운씨가 61년 중곡동에 공장을 차리고 진공관형 전축을 조립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바로 천일사의 「별표 전축」이다. 국적불명의 조립전축과 외제전축이 판을 치던 시대에 별표 전축은 순수한 우리 기술과 상표로 잘도 버텨 70년대 중반까지는 국산전축의 대명사로 불렸다. 천일사는 한때 3천명의 종업원을 거느릴 만큼 번창했으나 무리한 사업확장이 화근이 돼 결국 78년 태광산업 (현재의 태광 에로이카)에 인수되고 말았다.
비슷한 때에 출발한 성우전자의 독수리표 전축도 60∼70년대 중반까지 별표전축과 어깨를 나란치 했다. 60년대의 전축은 사치품으로 인식됐던 만큼 기능보다는 외관을 꾸미기에 치중했다. 요란한 장식 등이 달리고 울긋불긋 호마이카 칠을 한데다 덩치도 커 마치 장롱 같은 모양을 한 것이 주종이었다.
태동기를 거친 한국 오디오산업은 67년부터 박정희 대통령이 전자공업육성책을 펴자 70년 들어 성장기를 맞았다. 70년 미국에서 전자공학을 공부하고 돌아온 윤두영씨가 인켈의 전신인 한국 일렉트로보이스 (그후 동원전자로 개명)를 세운 것을 비롯해 「스트라우트」의 서음전자, 롯데 파이오니어, 박흥식씨의 화신전자 등이 비슷한 시기에 출발했다. 이때는 진공관을 대체할 획기적인 신무기 트랜지스터가 개발돼 오디오기술이 혁신을 거듭하는 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0년대까지 우리 오디오는 소비자들에게 외면 당하기 일쑤였다. 형편이 나아져 오디오를 구입할 수 있게된 사람도 매킨토시·마란츠·파이오니어 등 외제에 눈길을 돌릴 뿐이었다. 70년대 후반 가전 3사가 새로 뛰어들고 하이파이 시스템 개발 경쟁이 불붙은 80년대 초에 들어 우리 오디오는 비약적인 발전을 구가했다. 날렵하면서도 중후한 수백만원대의 국산 고급 컴포넌트가 잇따라 시판되고 80년대 중반부터는 CDP(콤팩트 디스그 플레이어), 서라운드 시스템 등이 나와 끊임없이 신규 수요를 촉발했다. 기술도 외국에 필적할 만큼 물이 올라 수출도 꾸준히 늘어났다.
오디오산업은 90년대에 접어들어 보급률이 50%에 이르자 다소 침체기를 맞고 있다. 업계는 이에 따라 고출력의 미니컴포넌트나 LDP(레이저 디스크플레이어), 오디오와 비디오를 결합한 AV시스템 등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어 오디오는 원음을 추구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듣고 보고 참여하는」 첨단하이테크화로 치닫고 있다. 외국기술을 쫓아가기에 급급했던 우리 오디오산업도 이제는 궤도에 오른 만큼 세계에 내놓을 명품 하나쯤 만들어냈으면 하는 것은 비단 오디오 마니아들의 바람만은 아닐 것이다. <이재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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