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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게임 수입심의 왜 안 하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비디오게임이 청소년들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로 부상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아무런 정책대안이 없어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비디오게임도 영화·비디오 등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문화상품」이라는 인식이 제고되어야 함에도 현실적으로 그렇지 못하다는 것.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비디오게임에 대한 사전 심의과정이 없다는 것이다.
영화·비디오 등을 해외에서 수입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심의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비디오게임에는 이러한 절차가 없다. 현재 보사부허가 단체인 유기장협회에서 수입추천을 해주고있으나 단체의 성격상 게임내용을 일일이 체크하기도 어렵거니와 도덕적·윤리적 차원에서의 심의는 전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나마 이런 형식적인 심의도 업소용에만 한정되어 있을 뿐 가정용에는 전혀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비디오게임의 심의 필요성이 날로 높아지는 가장 큰 이유는 현재 시중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대부분의 게임이 일본제라는 사실 때문이다. 닌텐도의 「스트리트 파이터」시리즈, 「월드히로」 「언더커버 콥스」등 주로 격투기를 소재로 하고 있는 이 게임들은 잔인한 살상장면이 아무런 여과 없이 그대로 묘사되고 있다. 게다가 역사를 소재로 하고 있는 게임 등은 한·일 관계를 왜곡되게 묘사한 것도 있어 청소년들에게 왜곡된 역사인식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
이들 일본제 게임들은 등장인물과 내용에서 국제적인 성격을 표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실상은 일본 색이 짙게 배어 있다.
「스트리트 파이터」의 경우 스모 선수를 등장시키는 등 알게 모르게 일본문화를 청소년들에게 낯익게 하여 일본문화에 대한 거부감을 약화시키는 작용을 한다. 그래서 비디오게임이 일본문화 침투의 첨병 구실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날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일본영화나 노래는 철저히 규제를 하면서 비디오게임에 대해서는 왜 수수방관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비디오게임을 통한 일본문화의 침투는 각종 게임잡지들에 의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3∼4년 전에만 해도 2, 3종에 그치던 게임 잡지들은 비디오게임 시장이 활황을 띠면서 10여종으로 늘어났는데 이들은 일본의 최신게임들을 국내에 충실히 소개하는 「가이드」역할을 하고 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국내의 게임기 시장은 이미 일본에 의해 상당부분 잠식된 상태다.
업계의 추산에 의하면 국내 시장규모는 지난해 기준으로 1천2백억원에서 1천3백억원 규모. 이 시장의 절반이상이 일본 기기에 의해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상공부에서는 지난 91년5월 게임기 완제품을 수입 다변화품목으로 지정해 일제 기기의 수입을 규제하고는 있으나 부분품의 수입은 여전히 가능해 이도 유명무실한 조치가 되고 있다. 부분품만을 수입해 국내에서 얼마든지 완제품을 조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평론가인 김종엽씨는 『21세기는 비디오게임 등을 비롯한 영상 소프트웨어가 경제력의 척도가 되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한국적인 게임 소프트웨어의 개발을 위해서는 이 분야에 대한 문화정책 및 산업 정책적인 고려가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임재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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