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시대」공개 선언|12년만에 여린 사노청 8차 대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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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북한 노동당의 핵심 전위조직인 사회주의 노동청년동맹(사노청) 제8차 대회가 18일 오전 막이 올라 닷새간의 일정을 마쳤다.
81년의 제7차 대회이후 12년만에 열린 이번 대회는 사노청이 그동안 벌여온 각급 청년운동의 성과를 총화하고, 규약을 바꾸는 등 관례적 일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이번 대회는 「김정일 시대」의 본격적인 개막을 알리는 공식행사로 관측돼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무엇보다 당 대회 다음으로 큰 행사인 사노청 대회의 개최시기 및 보고내용, 최근의 북한동향이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해준다 하겠다.
먼저 이번 대회가 9일의 3대혁명 소조 발기20주년 보고회 및 16일의 김정일의 생일 등 일련의 「김정일 행사」와 맞물려있는 점이 주목된다.

<당 대회 전 열려 주목>
3대 혁명(과학·문화·기술혁명) 소조는 73년 2월 김정일이 후계자로 지명되면서 만든 조직으로 맹원 5백만 명의 사노청과 함께 김의 실질적인 버팀목 역할을 해왔다.
뿐만 아니라 이번 대회는 25일 김영삼 정부의 출범을 목전에 두고 열리는 데다 통상 당 대회 직후에 열려온 관례를 깼다는 점도 음미해 볼 대목이다.
요컨대 역대 사노청 대회는 당 대회에서 결정된 새 노선을 맹원들에게 알려주고, 실천방안을 모색하는 행사였던 점을 감안하면 뭔가 꿰맞춘 감이 없지 않다.
때문에 이번 대회는 차기행정부의 카운터파트가 김정일 비서라는 사실을 남한 쪽에 넌지시 비춰주는 상징적 의미도 갖고 있다는 게 지배적인 시각이다.
사실 북한언론은 최근 특집시리즈를 통해 새 세대 지도자로서 김정일을 대대적으로 부각시켰다.
중앙방송은 1월27일부터 18회에 걸쳐 「김정일의 청년운동에 관한 독창적인 사상」을, 3일부터는 「정년운동을 이끈 영도」를 9회에 걸쳐 다뤘다.
또 평양방송도 문답풀이로 본 「김정일의 청년운동」을 14회에 걸쳐 방송했다.

<해외 대표 초청 전무>
북한방송의 이 같은 선전은 최근 전례가 없었으며, 또한 81년의 7차대회 직전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라는 지적이다.
게다가 김정일은 다음달 8일 중국을 공식 방문키로 돼있다.
김정일은 해외나들이를 할 정도로 건강하지 못한 김일성을 대신해 이제 북한의 새 통치자로 데뷔, 정경의 아킬레스건인 핵문제와 경제난에 대한 중국의 협조를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방중은 김정일이 후계자 자리를 굳힌 이후에 나온 첫 해외방문이란 점에서 대의적으로 북한의「얼굴」이 바뀌었다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만만찮다.
또한 8차 대회는 작년 말 김정일이 주관한 제1회 「조선지식인대회」와 맞물려 국내외의 「엄혹한 시련기」를 맞아 청년들의 사상을 통제하려는 의도도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7차 대회에서 1백50개국의 해외대표를 초청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한 명도 초청하지 않았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게 당국의 분석이다.

<방중도 얼굴 알리기>
북한은 또 이 대회를 통해 청년들을 독려, 경제난의 돌파구를 찾으려 하고 있다.
이 같은 추세로 볼 때 김정일은 91년 12월 군 최고사령관의 취임에 이어 머잖아 작년 4월의 새 헌법에서 주석이 반드시 겸직하지 않아도 되는 국방위원장에 취임할 가능성이 크다하겠다.
아무튼 사노청이 3대 혁명 소조원의 상당부분을 껴안은 김정일의 최대 권력기반이고 8차 대회가 굵직한 대내외 행사의 중심고리인 만큼 앞으로 그의 행보가 주목되고 있다. <오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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