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군자리에서 오거스타까지 67. 멀리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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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1970년대 전성기 시절의 필자.

 골프를 하면서 누구나 한 번쯤 얼굴을 붉힌 적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런 경험이 있다. 1975년 초여름이었다. 남서울컨트리클럽에서 두 팀이 라운드에 나섰다. 동반자는 모 기업 회장 아들인 조씨 형제와 중견 기업인의 아들 이 모씨 등 여덟 명이었다.

 나와 이씨는 조씨 형제 가운데 형과 앞 팀에서 공을 쳤다. 조씨 형제 중 동생은 뒤 팀에 포함됐다.

 모두 싱글 핸디캡 수준의 실력파였기에 나는 9홀에 3, 4점씩 핸디캡을 주고 내기를 했다. 그때 내 기량은 언더파를 쉽게 칠 정도로 절정이었다.

 나와 같은 팀이 된 조씨가 4번 홀에서 티샷한 공이 OB가 났다. 갑자기 그가 “다시 하나 친다”고 했다. 즉 멀리건을 달라는 뜻이었다.

 골프를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멀리건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멀리건은 1930년대 미국에서 유래됐다. 당시 두 명의 신문기자가 라운드를 하려고 골프장에 갔다가 동반자가 없어 그 골프장 라커룸에서 일하는 사람과 함께 필드에 나가게됐다. 그런데 그 라커맨은 미스샷을 낼 때마다 “당신들은 연습을 많이 했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니 다시 한번 치겠다”며 또 샷을 했다. 그 라커맨의 이름이 바로 멀리건이었다. 그에게는 ‘미스터 멀리건’이라는 별명이 붙었고, 골프에서 벌타 없이 다시 한번 공을 치는 행위를 ‘멀리건’이라고 한다. ‘몰간’ 이라는 발음은 잘못된 것이다.

 나는 “왜 멀리건을 달라고 하느냐”며 조씨 앞을 가로막았다. “멀리건은 통상 몸이 덜 풀린 첫 홀에서 동반자가 주는 것이지 플레이어가 스스로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고 점잖게 설명했지만 그는 막무가내였다.

 분위기가 어색해지자 다른 동반자들이 “그냥 한 개 치게 해 주자”며 나를 말렸다. 말다툼 와중에 그가 샷을 하고 말았다.

 나는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었다. 프로골퍼를 무시하는 듯한 그들의 태도를 보고 “누가 너희들 맘대로 치라고 그러더냐”며 악을 썼다.

 그러자 조씨는 “아이 xx, 하나쯤 더 치면 안 되나?”라며 불손한 언행과 태도를 보였다. 그는 나보다 몇 살이나 적었다.

 욕을 듣고 흥분한 나는 “야, 이 나쁜 놈들아. 부자들은 그 따위로 룰을 안 지키고 골프를 쳐도 되는 거냐? 건방진 놈들 같으니라고”라며 한바탕 말다툼을 벌였다.

 동반자들이 “서로 재미있게 골프를 하다가 싸우면 되느냐”고 말려 겨우겨우 사태는 수습됐지만 분이 풀리지 않았다.

 그 뒤부터 공이 잘 맞지 않았지만 라운드가 끝나고 보니 돈을 잃은 쪽은 조씨 형제였다.

 라운드를 마친 뒤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서 “기업인 2세들은 룰을 어기며 골프를 쳐도 되는 거냐”고 다시 언성을 높이며 조씨와 다퉜다. 그 이후 라운드를 하면서 얼굴을 붉힌 경우가 많지 않아 당시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골프는 이렇게 프로골퍼나 사회 유명인사의 인격을 망가뜨릴 수 있다. 골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룰을 지키는 것이다.

 내 행동 하나 하나가 동반자에게 나쁜 영향을 주지 않는지 조심스럽게 살피고, 스스로 룰을 잘 지키는 것이 골프 경기다. 지금은 고인이 된 조씨와 얼굴을 붉히며 싸운 일이 지금도 후회된다. 신사 운동을 하면서 후회할 행동을 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골프가 무엇인지 잘 모르던 젊은 시절의 에피소드다.

한장상 KPGA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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