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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통령 ″통치사료 남겨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25면에서 계속>
「통치사료」를 기록하는 작업은 83년 들어 시작됐다.
5공 당시 청와대의 공보비서실은 공보수석 휘하에서 비서관들이 홍보기획·보도·외신·방송매체·영부인홍보·문고(연설문작성) 등의 업무를 나누어 담당했다.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83년2월3일자로 통치사료 담당비서관(1급)이 새로 생겼다. 이때부터 86년2월까지는 최재욱 비서관(현 민자당의원)이, 86년2월부터 전 대통령 퇴임 때까지는 김성익 비서관이 책임을 맡았다.

<″국사 영속성 있어야〃>
『전 대통령은 집권 후 전임자들의 기록이 제대로 남아있지 않아 아주 애를 먹은 듯합니다. 레이건 대통령과 한미간 정상회담을 앞두고 외무부에 과거 양국의 정상회담 대화록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는데 놀랍게도 거의 보존돼 있지 않더랍니다. 총무처의 정부기록보존소도 마찬가지였고요. 이래서는 안되겠다, 정권은 교체되더라도 국가나 외교는 영속성이 있는 것 아닌가, 취임한 대통령마다 새로 처음부터 공부해야 할 형편이니 한심하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어요.
더구나 당시 우리는 이승만·박정희 두 전임대통령마저 작고한 형편이지 않았습니까. 쫓아가서 물어 볼 곳도 없었지요. 나부터라도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에서 통치사료 작업을 지시한 것으로 압니다.』(최재욱씨)
『대통령의 지시나 대통령에 대한 보고, 각종 행사장에서의 발언 등을 노트필기 등의 방법을 동원해 그때그때 기록하고 다시 카드에 타이핑해서 정리했습니다. 전 대통령이 퇴임 후 회고록을 쓰는 자료를 마련한다는 목적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공식회의는 물론이고 비공식 또는 비공개회의에서 대통령이 한 발언에도 비중을 두었습니다.』(김성익씨)
이렇게 작성된 엄청난 분량의 카드기록들은 88년 전 대통령 퇴임 때 공적인 내용들은 총무처로, 그 외의 다분히 사적인 내용들은 전씨의 사저로 각각 분류돼 옮겨졌다고 한다.

<비공식행사도 기록>
기록카드는 일정한 양식을 갖춘 것으로 「동정일지」와 「통치사료기록서」가 있다. 동정일지는 대통령의 그날 일정을 상세히 기록한 것으로 시간·건명·장소(교통편)·참석자·배석자·담화형식 및 녹화·사진·보도·취록 여부까지 기재하게 돼 있다. 한 예로 82년4월1일자일지는 다음과 같다.
「82년4월1일 목요일 맑음. 08:55-09:03 내부보고, 서재, 이범석 비서실장, 지시. 09:03-09:30 내부보고, 장세동 경호실장. 09:30-09:40 내부보고, 전석영 총무수석. 09:40-09:55 내부보고, 김재익 경제수석. 10:00-10:25 세계무역센터협회 회장접견, 서재, 서석준 상공·신병현 회장 배석. 10:30-11:00 싱가폴 수상 장남 접견, 서재, 이범석 실장·김병훈 의전수석 배석, 환담, 취록. 11:00-11:30 이범석 실장 독대, 지시. 11:05-12:30 주미대사 인견, 서재, 유병현 대사. 13:10-13:40 내부보고, 허삼수 사정수석. 13:40-14:00 내부보고, 김태호 정무2수석. 14:00-14:40 내부보고, 손제석 교문수석…」이날 전 대통령의 일정은 안보정책회의와 안기부장(유학성)·내무장관(서정화)·외무장관(노신영)의 연이은 보고를 받고 오후 6시50분에 끝난 것으로 기록돼 있다.
한편 「통치사료기록서」는 문서번호·사료발생일·사료작성일·발생장소 및 계기·작성자(직책·성명)·제목을 기본항목으로 해서 대통령과 참석자들이 나눈 발언내용을 적고 때에 따라서는 뒷면에 좌석배치도까지 첨부했다.
5공의 통치사료 중 김성익씨가 담당했던 부분은 지난해 10월 책으로 출판돼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특히 87년 6·29선언의 경위가 언급된 대목은 당시 전·노 두 전·현직대통령간의 갈등을 상기시키면서 더욱 관심을 모았다.
『사실은 2주일 전에 노 대표와 저녁을 함께 할 때 내가 직선제를 검토해 보라고 했더니 노 대표가 펄쩍 뛰었다. 그래서 내가 「필사즉생, 필생즉사」라고 했어. 그리고 인간사회의 모든 원리가 백보 전진을 위한 일보후퇴에 있다, 지는 사람이 이기는 거라고 말해주었다.』(김성익, 「전두환 육성증언」)
1차 자료로서 이 같은 기록이 남은 데 대해 한승조 교수(고려대)는 『기초적인 사료마저 부족한 우리 형편에서 매우 높이 평가한다』고 견해를 밝혔다. 한 교수는 또 『혹시 정치적으로 악용된다면 바람직하지 않겠지만 그 같은 기록을 적절한 시기에 내놓는 것은 여러 면에서 긍정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6공서도 작업 계속>
노태우 대통령의 6공화국은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고 있을까.
김학준 공보수석비서관은 『노 대통령도 기록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으며, 따라서 사료를 기록하는 작업도 더욱 짜임새 있게 계속되어 왔다』고 설명했다.
노 대통령의 5년간 각종 연설문은 전 전 대통령의 8년간(11, 12대)의 거의 두 배 이상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사적인 성격의 모임은 기록대상에서 일절 제외하고 있습니다. 노 대통령도 일찍이「사료담당 비서관은 국가의 공적인 기록에만 관여하라」고 지시한 적이 있어요. 특히 6공 들어 청와대의 업무는 거의 공개적인 절차로 처리되기 때문에 전임 대통령 때와는 상황이 많이 다릅니다남 김 수석비서관은 『노 대통령의 퇴임을 눈앞에 두고 5년간 쌓인 사료들을 분류하느라 한창 바쁘다』고 말했다. <노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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