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당 전국구는 “고용인”인가/오병상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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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8일 국민당의원이 또 2명 탈당했다.
탈당한 정장현·최영한(최불암)의원은 모두 전국구다. 정 의원은 현대맨이기에 정 전대표의 탈당지시설이 알려졌을 때부터 탈당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그는 지난 15일 아침 김동길최고위원이 신임대표로 추대되자 기자실에 나타나 『나는 절대 탈당안한다. 당에 남아 끝까지 콧수염(김 최고)을 애먹이겠다. 콧수염을 깎지않는 한 탈당안한다』고 감정섞인 「잔류」의사를 밝혔었다. 그러나 끝내 『김 최고에게 길을 열어주기 위해 탈당한다』는 변을 남기고 떠났다. 최 의원도 지난 15일 정 의원으로부터 『탈당하지말라. 긴급지시다』는 얘기를 전해듣고 『탈당 안한다』고 했다가 정 의원과 같이 떠났다.
전국구의원들의 탈당을 보면서 지난해 5월 같은 전국구인 조윤형의원이 국민당을 탈당했을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정 대표는 당시 조 의원의 탈당소식을 듣고 격노,『무슨 일이 있더라도 금배지를 뺏어야 한다』고 지시했었다. 하지만 아무리 궁리해도 현행법상 금배지를 뺏을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국민당은 탈당한 전국구의원의 의원직 보유를 인정하는 현행법을 「헌법정신에 위배된다」며 헌법소원을 내기도 했다. 지역구인 박희부의원이 탈당했을 때는 중앙당사무처요원 등을 동원해 국회앞길에서 「똘마니」 운운하는 피킷을 들고 시위까지 하게했던 국민당이다.
그처럼 격노했던 장본인인 정주영전국구의원 자신이 이제 앞장서 탈당해버렸다. 나아가 「정계은퇴」까지 선언했다. 그러나 아직 의원직은 고수하고 있다. 그의 측근인 정장현의원은 탈당하기전 탤런트 출신 최영한(최불암) 의원에게 전화하면서 『강부자(전국구예비후보 1번)보고 꿈깨라고 하시오. 정 대표는 정계를 떠나도 의원직은 안버릴테니까』라며 정 전대표의 의원직 고수의사를 대변했다.
정 전대표와 함께 국민당을 만든 창당파의원중 전국구는 7명. 이중 문창모·양순직의원 두사람만 남아 있으며,국민당 이름으로 당선된 지역구의원도 이미 10명이 탈당했고 대부분 탈당의사를 공표하고 있다. 이들의 행태에서는 과연 「민의의 대변자」인지,아니면 「정심의 대변자」인지,「독립된 헌법기관」인지,「종속된 고용인」인지의 분간이 어렵다. 요즘 국민당에 남아있는 일부사무처요원사이에 유행하는 만담 한 토막. 『너 정주영 닮아가는구나』고 하면 대답은 『국민당에 들어와서 변했다』고 한다. 이들은 『정주영과 국민당이 만든 사회병리현상의 한 단면』이라며 씁쓸하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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