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없어도 나만 믿어라〃|겨울코트 돌풍 일으키는 화제의 두 주인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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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농구대잔치에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서울신탁은행과 국민은행 등 두 금융 팀의 선전이 돋보이고있다.
특히 1차 대회에서 모두 몰락한 남자금융 팀과 달리 서울신탁은행과 국민은행은 플레이오프전진출을 향해 실업 세를 위협하는 세력으로 등장하고 있다.
태평양화학으로 자리를 옮긴 임영보 감독이 일궈놓은 결실을 향유하고 있는 국민은행의 김태환 감독과 달리 신탁은행의 김재웅(50) 감독은 소속팀을 강호로 직접 키워낸 인물이다.
구단지원 등에서 일반실업팀과 월등하게 열세에 있는 금융 팀의 처지로서 김재웅 감독은 실업팀한번 맡아보면 소원이 없다할 정도로 서러움 속에서 농구지도자인생을 보냈다. 실업 팀의 연간예산이 5억∼6억원을 상회하나 금융 팀은 고작해야 1억여원 정도. 이러한 열악한 환경에서 스카우트에 밀려 스타급 선수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채 실업팀에서「버린」(?)선수들은 키워 강호로 조련해온 피눈물 나는 과거를 갖고 있다.
임애경 강선구 박미형 등 현재 주전선수만 해도 각 팀이 눈여겨보지 않던 선수들. 때문에 그는 선수를 볼 줄 아는 안목과 탁월한 조련술을 가진 지도자로 정평이 나있다. 이것이 20년 지도자생활 중 유일한 무기다. 이를 인정받아 그는 연 고대 출신이 주름잡은 성균관대 경제학과에 당당히 시험으로 입학했으며 재학 중에 학업을 병행하면서 성대농구팀 창설을 주도하기도 했다.
농구에 입문하기 전 그는 사실 유도가 「본업」이였다. 유도 10단이었던 선친 김근찬씨의 영향으로 중학교 1학년 때 유도를 하다 2학년 때 농구로 잠시 외도한 것이 전적이 되고만 것이다.
대학졸업 후 모교인 배재고를 비롯, 춘천여고·청주여상 코치로 전전하다 지난 83년 불혹의 나이에 신탁은행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신탁은행 팀은 각종대회예선의 하위를 면치 못했으나 끊임없는 노력으로 85년부터 실업의 강호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방원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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