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자존심 회복하려면…/이하경사회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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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김영삼차기정부에서 신설이 논의되고 있는 부정방지위원회의 성격과 권한을 둘러싼 논란을 지켜보는 검찰의 표정이 심각하고 무겁다.
정권인수위측이 최근 부정방지위를 대통령직속으로 하되 부정부패척결을 위한 제도개선과 연구기능외에도 정부사정기관의 업무를 협의 조정할 수 있고 대통령의 특명사항을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안을 내놓자 검찰의 반응은 한마디로 착잡했다. 감사원·검찰·경찰의 사정업무를 통괄하는 옥상옥의 기구로 5공시절의 사회정화위원회에 비견된다는 것이다.
당시를 겪었던 검사들은 사회정화위원회가 부정부패를 척결하기는 커녕 오히려 새로운 권력기관으로 군림해 또다른 부조리의 온상이 됐던 권위주의 시대의 불행한 산물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새로운 실력기관의 간섭으로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이 흔들렸던 일,객관성이 없는 불확실한 소문을 근거로 해온 수사요청을 형식적으로 처리한 낭비와 불합리,이로 인해 검사들이 일손을 놓기까지 했던 불유쾌한 경험담을 털어놓기도 했다. 어느 검사는 심지어 당시 사회정화위의 상당수 실무자들이 일종의 공갈·협박으로 금품을 갈취해 물의를 빚었고 이 기구의 실력자들은 후일 대표적인 정화대상자로 판명됐다고 회고했다. 실패한 역사는 되풀이돼서는 안되며,따라서 새로 설치될 기구는 자문기구이상의 권한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것이 공통적인 의견이다.
준사법기관으로서의 헌법적 지위를 인정받는 최고의 수사기관인 검찰의 권한이 어떤 형태로든 침해되는 것은 검찰이 우려하는 것처럼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러나 검찰은 이런 일련의 움직임을 계기로 먼저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공명정대한 검찰권의 행사로 국민의 신뢰를 받았다면 이런 사태는 결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며 급기야는 사정기관에 대한 사정방침까지 차기대통령에 의해 천명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 분명하다. 이 부분에 대한 상당한 책임이 검찰을 부당하게 이용해온 역대정권쪽에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검찰이 국민의 편에 서서 외풍에 당당히 맞서기보다는 적당히 타협해왔고 검찰권이 차별적으로 행사돼 편파수사·눈치보기 수사로 불신을 초래했던 데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뼈저린 반성과 자정노력을 통해 국민의 검찰로 태어나는 것만이 외부기관의 입김에서 벗어나고 상처받은 자존심을 회복하는 길임을 검찰에 몸담고 있는 이들은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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