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술 가미된 생존전략”민자냉담/정주영씨 현대복귀 못마땅한 분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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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여권 기본입장은 조금도 안누그러져
김영삼 차기대통령과 민자당은 국민당의 붕괴를 냉담하게 지켜보고 있다. 정주영씨가 아무리 정치적 백기투항을 해도 정씨·현대·국민당에 대한 김 차기대통령의 인식은 별로 바뀔 것 같지 않다. 국민당탈당의원을 받아들일 것이냐의 문제도 검토자체가 새정부출범이후로 미루어질 것으로 보이며 그들이 들어오고 싶다고 들어와지는 것이 아니라는 태도다.
민자당은 만신창이가 된 정씨나 국민당의원들의 숫자를 탐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듯 하다. 원내과반수는 돼있기 때문이다.
○…김 차기대통령은 당선이후 지금까지 정씨에 대한 입장을 시종일관 조금도 바꾸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도 바뀌어지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이 측근들의 공통된 관측이다.
김 차기대통령은 정씨가 법에 따라 처벌되어야 하고 공인으로서 도덕성을 상실했으므로 현대라는 거대기업의 지도자로 다시 돌아가서도 곤란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정씨가 현대에 돌아가는 것이 현대를 살리는데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는 판단인듯 하다.
국민당은 정씨가 빠지면 어차피 부서질테니 그대로 놔두면 되고 정씨와 정치적으로 타협하는 인상을 주거나 굳이 개입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확고해 보인다.
김 차기대통령은 민자당이 『정씨가 경제활동에 전념키로 한 것은 정도로 돌아온 것』이라고 논평한데 대해 『탕아에게 무슨 정도가 있나』라며 못마땅해 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정씨가 기업에 돌아가는 것조차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상황으로 볼때 그동안 정씨측에서 애써온 구명노력은 별로 성과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씨는 일본에서 김윤환의원을 만난 것이 거의 분명하고 정세영 현대회장·정몽준의원을 통해 민주계 중진의원들에게 투항의사를 누차 밝혀왔지만 이런 뜻이 김 차기대통령에게 전달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김 차기대통령측과 당인사들은 국민당사태를 고도의 상술이 가미된 정씨의 필사적 생존전략이라고 보고있다. 한 고위관계자는 『정씨가 자신의 일가와 현대를 살리기 위해 의원들을 투매하고 있다』고 비꼬았다.
김영구사무총장·김용태원내총무와 김 차기대통령 측근들은 공작설­민자당 개입설은 터무니없다며 고개를 가로젓고 있다. 한 측근은 『가만히 놔두어도 부서질 모래성을 왜 괜히 건드려 오해를 사겠느냐』고 했다.
여러 정황으로 볼때 뚜렷한 힘의 작용이나 개입이 있었다는 증거는 별로 없다. 그러나 정씨측에서 이런 극단행동에 앞서 여러 채널을 통해 김 차기대통령측에 사전 통보한 일은 있는 것 같다. 한 측근인사는 『정씨는 의원직도 내놓을 것이며 정몽준의원도 동료의원과 함께 민자당문을 두드릴 것』이라고 자신있게 전망했다.
당인사들은 전략적 측면외에도 정씨의 황폐화한 심경이 사태의 핵심적 배경이라고 짚고 있다. 국민당 탈당의원을 만났던 한 민주계 중진의원은 『국민당사정을 들어보니 정씨가 민자당 탈당­국민당 입당파의원들에 대해 심한 불쾌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더라』고 전했다.
민자당은 대세의 흐름상 국민당문제는 거의 끝난 일이라고 보고 의원영입은 나중의 문제로 다룰 방침이다. 관계자들은 『우리가 서두를 필요가 어디에 있는가.(국민당을) 나온 사람들이 갈데가 어디 있는가』고 여유있는 표정이다.<김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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