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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사실 모르는 한국병/이어령(시평)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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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미국의 초·중등학교 교실 입구에는 금속탐지기가 설치되어 있는 곳이 많다. 학생들은 마치 비행기를 타는 승객들처럼 매일 이 탐지기 문을 통과해야만 수업을 받을 수가 있다. 그 이유는 칼은 물론이고 권총과 같은 총기를 소지하고 등교하는 학생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확실한 통계인지 모르나 다섯명가운데 한명이 무기류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애들은 마피아 영화처럼 총기로 협박해 금품을 강탈하기도 하고 결투와 보복전같은 것을 벌이기도 한다. 선생들은 이 총기의 표적이 될까봐 성적이 불량한 학생들이 있어도 낙제점을 주지 못한다고 한다.
○대입부정 애정 과다탓
학교에 금속탐지기까지 등장해야만 되는 미국,자기 졸업장조차 못 읽는 학생이 학교를 졸업하는 미국,그런데도 미국대학에서는 십여년 전부터 입학원서용 사진을 폐지해 왔었다. 최근 들어 사진이 다시 등장하게 되었지만 우리처럼 무슨 부정이 생겨서가 아니라 흑인 입학생 우대정책때문이었다. 즉 사진이 없으면 흑인인지 아닌지 신원을 구별할 길이 없어서다.
한햇동안 총기로 사살되는 사람이 3만명 가까이 되는 무서운 범죄의 나라지만 어째서 미국의 대학에서는 입학원서에 사진을 요구하지 않고서도 우리처럼 뒤탈이 없는 것일까. 고교성적과 표준 테스트만으로 학생을 평가하고 마이너리티에 대한 특전과 때로는 주관적일 수도 있는 각종 재량권으로 학생을 선발하고 있으면서도 어째서 우리처럼 검찰에 구속되는 학부모·교수,그리고 재단관계자들이 생기지 않는 것일까. 돈을 받고 대신 살인을 해주는 청부살인자도 많은데도 어째서 우리처럼 돈을 받고 대신 시험을 치러주는 대리시험자는 없는 것일까.
○인정·연고주의가 문제
이런 질문을 던져보면 「과연 한국병의 정체란 무엇인가」하는 요즈음 쟁점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차별화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듯이 한국병이란 한국에만 있는 풍토병으로 이 땅에서만 발견되는 순수한 바이러스,이 나라에서만 생기는 특수한 종양이라야만 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번에 일어난 광운대 등 여러 대학에서 벌어진 대학입시부정이야말로 「한국병 제1호」로 명명해도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째서 한국에서만 그런 입시부정이 한번도 철을 거르지 않고 독감처럼 번지게 되는 것인지 원인규명을 하면 그 병균의 정체도 조금은 파악될 수 있을 것이다.
미국병의 하나인 학원 총기 폭력은 자녀에 대한 학부모의 무관심에서 비롯된 현상이라고 한다. 친부모 밑에서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하고 있는 미국의 국민학교 아이들은 세사람중에 겨우 한 사람꼴이라고 하니 그 사정을 알만하다. 그런데 우리의 학원 입시부정 원인은 정반대로 학부모의 지나친 관심과 병적인 과보호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쪽 병은 애정결핍증에서,또 한쪽은 애정과다증에서 발생된 병이다.
부정을 저지른 학교나 재단 역시 문자 그대로 사돈의 8촌까지 얽혀 있다. 대리시험을 치러준 학생 역시도 부모를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협박에 무릎꿇은 효자로 되어 있다. 반드시 가족이 아니더라도 끊을 수 없는 끈끈한 인간관계때문에 죄를 범한 경우도 있다. 이번 부정에 개입된 교사의 일부가 그렇다. 한국병의 특징은 그것이 가족이든 친구든 이른바 「연줄」로 얽혀 있는 것이어서 조금만 시각을 바꾸면 금세 미담기사로 뒤바뀔 수도 있는 것들이다.
미국의 범죄자들은 자기의 악을 스스로 믿고 내세우고 자랑까지 한다. 동성연애자들이나 마약상습자들이 데모를 벌이는게 그 예의 하나다. 그런데 한국의 범죄자들은 대부분의 경우 「알고 보면 나도 나쁜 놈은 아녀」라고 악을 부정하고 선을 선언한다. 그래서 한국의 범죄자들은 어느 경우든 카메라 앞에서 필사적으로 얼굴을 가린다. 특히 이번 입시부정의 경우에는 미리 용수같은 가리개를 만들어 쓰고 나타나기도 했다. 범죄자의 얼굴은 이미 아무데도 없는 것이다.
이 경우만이 아니다. 한국병이라고 생각되는 사회병리의 모든 현상을 캐가다보면 가족주의·연고주의·인정주의,그리고 체면지키기 등 한국의 오랜 전통이 도리어 그 온상이 되어 있는 수가 많다. 그러므로 지금은 돌을 던지지만 언제 자기가 그런 경우에 부닥치게 될지 장담못하는 보균자일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은 희생자로 착각
악한 일을 하고도 결코 자기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믿고 있는 사람,가족·친구를 위해서 오히려 아름다운 희생을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렇게 한국병은 미국병과 달리 언제나 음성반응을 보이고 있다는데 한층 더 그 치유의 어려움이 있다.
누구나 지금 한국병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천명이면 천명 모두 자신이 바로 그 환자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모두가 자신이야말로 한국병을 고치는 의사라고 믿고 비분강개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까지 포함해서.<문학평론가·문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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