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공포를 보여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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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호 14면

의대 본과에 올라가 처음으로 하게 된 해부학 실습. 선화(한지민)의 팀에 배정된 시체는 아주 예쁜 젊은 여성이다. 그런데 첫 실습을 마친 날 밤부터 선화는 외눈에 다리를 저는 의사와 살아난 시체가 등장하는 꿈을 꾸게 된다. 어느 날 선화의 룸메이트인 은주가 해부학교실에 갇혀 심장을 도려낸 시체로 발견되고, 선화의 팀원들은 모두가 동일한 꿈을 꾸고 있음을 알게 된다. 여기까지는 재미있다. 죽은 시체가 되살아나 움직이고, 뭔가 원한을 풀기 위해 꿈에 나타난 것만으로도 오싹해진다.
그러나 ‘해부학교실’은 먼먼 길을 돌아간다. 일단 대부분의 공포영화나 미스터리가 그렇듯이 과거로 향한다. 해부학을 강의하는 교수는 뭔가 비밀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개인적인 비밀이 아니라 병원 전체에 얽힌 어두운 과거다. 선화에게도 비밀이 있다. 선화의 아버지는 아내를 죽였고, 지금은 정신병원에 있다. 그들은 모두 어두운 과거에 얽매여 현재도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과거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해부학교실’은 단절된 과거들을 깔끔하게 이어주는 데 실패한다. 과거를 찾아가는 과정이 흥미롭기는커녕 너무나 진부하고 늘어진다. 공포에서는 원인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래서 지금 어떤 무서운 것이 존재하는가이다.
‘해부학교실’의 설정은 좋은 편이다. 해부학 교실의 서늘한 풍경 자체만이 아니라 사람들을 하나씩 교실 안으로 끌어들여 살해하는 방식도 꽤 괜찮다. 하늘에서 붉은 꽃잎이 날리다가 손바닥에 떨어져 핏물로 바뀌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하지만 이유를 찾아가는 순간부터 ‘해부학교실’은 말이 많아지고 안개 속을 헤맨다. 한마디로 말해 요령부득이다.
한국의 공포영화는 공포를 보여주기보다는 그 원인에 대해 자신이 얼마나 심오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과시하려고 애쓴다. ‘해부학교실’은 지금 한국 공포영화들이 빠진 늪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나는 누구인지 탐구하는 공포영화는 제발 그만 보고 싶다. 글 김봉석(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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