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World@now] 뉴욕은 지금 '소음과의 전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음악을 틀지 못하고 장사 하면서 손님이 급격히 줄었습니다. 손해가 이만저만 아닙니다. 서로 타협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미국 뉴욕에서 250대의 미니 트럭을 이용해 아이스크림을 판매해 온 '미스터 소프티'사의 부사장 제임스 콘웨이는 요즘 걱정이 태산이다. 뉴욕시가 소음 규제를 한다며 최근 아이스크림 차가 정차해 있을 땐 음악을 틀 수 없도록 했기 때문이다. 애견가도 마음이 편치 않다. 밤중에 개가 5분 이상 짖으면 벌금을 물어야 할 판이다. 낮에도 10분 이상 짖는 것은 봐주지 않는다.


그래픽 크게보기

시끄럽기로 유명한 뉴욕시가 '소음과의 전쟁'을 시작했다. 마이클 블룸버그 시장의 강력한 지원 아래 새 '소음 규제법'이 1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 법은 2005년 12월 최종 통과됐으나 나이트클럽 등 해당 업소에 준비기간을 줘야 한다는 의견에 따라 1년 반 동안 시행이 유보됐다.

이 법은 시민에게 '당연히 누려야 할 평화'를 주겠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그래서 모든 소음이 단속 대상이다.

버스.지하철에서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더라도 1.5m 떨어진 승객이 들을 수 있으면 안 된다. 야외공원이나 공공장소에서 라디오를 켤 경우 7.5m 떨어진 곳에서 소음이 들리면 단속 대상이다. 또 차량의 도난경보기가 10분 이상 울릴 때는 견인될 수 있다.

공사장 소음도 통제 대상이다. 건설업자들은 공사에 앞서 소음을 어떻게 줄일 것인지 계획안을 만들어 시에 제출해야 한다. 벌금은 적게는 50달러(약 4만6000원)에서 2만4000달러(나이트클럽 소음)까지 천차만별이다.

뉴욕시가 이처럼 엄격한 소음 퇴치에 나선 것은 주민의 원성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민원 해결을 위해 설치한 '품위있는 삶 전화'에 지난해 접수된 불만 중 소음 문제는 무려 27만여 건에 달했다.

소음이 시민의 건강을 위협한다는 점도 규제의 배경이다. 미 환경보호국(EPA)에 따르면 75데시벨(dB) 이상의 소음에 오래 방치되면 청력이 약해질 수 있다. 그런데 심한 정체 상태에서의 교통 소음은 평균 85dB에 이른다.

또 지하철 내부의 소음은 평균 90dB, 구급차 사이렌은 120dB이다. 미국에서 교통체증이 가장 심하면서도 구급차.경찰차가 노상 왱왱거리며 달려가는 상황을 감안하면 뉴욕 시민은 위험 수준의 소음에 늘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

규제가 시작되자 여기저기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개주인들부터 불만을 터트렸다. 이들은 "거의 모든 소음이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는데 왜 죄 없는 개를 타박하느냐"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또 일부 단속 기준은 모호하게 규정돼 있어 시빗거리가 됐었다. 당초 나이트클럽에 대해서는 '부적절한 소음을 내면 처벌한다'고 돼 있었으나 너무 애매하다는 비판이 많아 42dB로 단속 기준이 구체적으로 정해졌다고 한다. 그러나 소음에 불만이 컸던 만큼 이 법에 기대를 거는 이도 적잖다.

소음규제법 제정에 참여한 로 북맨 변호사는 "시행 초기라 말도 많지만 이 법에 힘입어 앞으로 뉴욕이 더 조용해지고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뉴욕=남정호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