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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 보호|백석기<한국정보문화센터 연구실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직장에서 근무경력이 많아지다 보면 낯선 편지를 자주방게 된다. 상품안내서가 대부분이지만 어떻게 알아냈는지 직장이나 집 주소는 물론 정확한 한자로 이름까지 또박또박 적어 보낸 것도 있다. 이럴 땐 자신이 세상에 좀 알려졌나 보다 하며 흐뭇해하는 이도 있지만, 남에게 감시당하고 있다는 불안감에 젖는 이도 상당치 많다.
요새는 컴퓨터가 별의 별일을 다하게 되면서 전에 없던 일거리나 직종이 자꾸 생겨나고 있다. 물건보다 무형정보가 더 비싸고 거래가 활발해지면서부터 개인의 사적 정보수집만으로 먹고사는 사람도 부쩍 늘고 있다. 어느새 인간정보가 상품가치로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됐기 때문이다.
개인용 컴퓨터 속에 각계각층 사람들의 주소를 모아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놓고 선전물을 대신 보내 주는 DM(Direct Mail)회사도 그 한 예에 속한다. 이보다 한 단계 앞선 직종으로는 각종신용카드회사로 자체 컴퓨터에 저장돼 있는 가입자의 신상기록을 활용하는 것이 있다. 여기에는 고객별로 연간 거래 액·기호품·재산·신용상태뿐만 아니라 수사상의 알리바이에서 생활습관이나 성격까지도 추적해 낼 수 있다. 아직 국내 카드회사들은 통신판매 알선에 그치고 있다. 그러나 정보조사·분석업무로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이 확실하다.
이미 현대 사회는 컴퓨터와 통신기술이 자유자재로 접목되면서 고성능 전자도청장치, 감시장치를 누구나 쉽게 배워 어디서나 써먹을 수 있다. 이제는 분쟁과 이해가 얽힌 곳에는 관련 인물의 프라이버시 문제가 항상 따라다닌다. 한번 정보의 표적이 되고 나면 누구도 피해 나가기 어렵다. 그래 선지 근래에는 전화번호부에서 자기이름을 빼는 사람이 늘고 있다. 정기적으로 번호를 바꾸기도 한다.
프랑스에서는 화상전화 실용화에 성공했는데도 사업으로서는 의외로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하고 있다. 서로 보면서 얘기하면 얼굴·의상·매너가 온통 노출되어 프라이버시 침해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도 현대의 첨단기술과 개발화의 국제추세는 어디서든 누구의 생활도 거울을 보듯 더 극적으로 벌거벗겨 가는 기술을 멈추지 않고 있다. 그래서 현대사회는 카리스마가 없어지는 사회라고 한다. 과거에 사생활의 자유를 비밀스럽게 누리던 사람들은 거의가 권력과 명예와 부를 지닌 유명인사들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사람일수록 정보수집의 대상이 되어 항상 쫓기면서 구속된 생활에 시달리며 살아가야 한다.
그러면 앞으로의 사회에서는 어떻게 사는 것이 인생을 즐기며 사는 행복한 삶이 될까. 아마도 그것은 정보추적에서 해방된 평범한 시민들의 삶이 될 것이다. 과대 망상적 야망에 들떠 살기보다는 작은 성취에 만족하며 살아갈 줄 아는 보통사람만이 풍요속의 자유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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