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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중앙은 분데스방크/내리막 유럽통화 구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유럽통화 기축”영향력 막대/금리인하 조치로 외환시장 위기벗어나/경기회복 기대감으로 증시도 활황세로
『분데스방크의 한마디에 유럽사람들은 울고 웃는다.』
이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독일의 중앙은행 분데스방크가 4일 그 위력을 다시 한번 과시했다. 분데스방크가 이날 재할인금리와 롬바르트금리를 인하하자 전날까지 울상이었던 유럽 각국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기껐해야 재할인율이 0.25%포인트,롬바르트금리가 0.5%포인트 내렸는데도 유럽 주요 증시에서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으로 사자주문이 계속됐고 외환시장은 안정을 되찾고 있다.
유럽공동체(EC) 각국의 통화는 잘 알려진대로 유럽통화제도(EMS)의 환율조정장치(ERM)로 환율변동폭이 조정되고 있다. 지난 1979년 설립된 이 통화안정 메커니즘으로 유럽 각국의 통화는 그간 비교적 안정된 환율을 유지할 수 있었다.
바로 이 EMS의 기축통화가 독일의 마르크화다. 즉 EMS가맹국 통화의 대마르크화 변동폭은 상하 2.25%(영국·스페인·포르투갈은 6%)로 이 범위내에서만 환율변동이 가능하다. 지난해 영국의 파운드화와 이탈리아의 리라화가 이를 탈퇴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이들 통화가 독일의 고금리로 변동폭의 하한선까지 폭락,분데스방크 등 각국의 중앙은행이 이들 통화를 매입하는 등 대거 시장개입에 나섰으나 결국 이를 방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최근 들어서도 프랑스의 프랑화나 덴마크 크로네화 등 마르크화를 제외한 거의 모든 유럽통화에 위기가 닥쳐 각국 중앙은행이 시장개입에 나서 간신히 이를 지키는 등 EMS는 살얼음판 위를 걸어왔다.
이러한 시점에 나온 분데스방크의 금리인하는 유럽통합을 추진하는 EC 각국의 정부는 물론 자국 통화방어에 진력하던 각국 중앙은행들엔 그야말로 복음이었다. EMS가 붕괴되면 유럽통화 통합 자체가 무의미해질뿐 아니라 유럽,나아가 전세계 금융시장이 파국적 대혼란을 겪게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총재·부총재와 9명의 지방은행(란데스방크)총재 등 16명으로 구성되는 분데스방크 이사회는 고유권한인 금리의 인상·인하로 통화량을 조절,물가의 안정을 도모하고 있다.
분데스방크는 중앙은행 독립의 전형으로 불린다. 연방정부로부터 철저하게 독립돼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분데스방크는 헬무트 콜총리 정부와 마찰을 자주 빚고있다.
경제의 두마리 토끼,즉 안정과 성장중 국민의 표를 의식해야 하는 정부로서는 성장을 중시하는게 보통이지만 「안정의 파수꾼」분데스방크가 한치도 양보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뮌헨에서 서방선진7개국(G7) 정상회담이 개최됐을때 미국 등 여타 국가로부터 강력한 금리인하 압력을 받은 콜총리가 『금리인하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하자 1주일 뒤 분데스방크는 물가안정을 이유로 거꾸로 금리를 인상,분데스방크의 진면목을 과시한 적도 있다.
분데스방크가 이처럼 안정에 집착하는 이유는 1차대전 이후 한때 연간 물가상승률이 2천억%에까지 달했던 처절했던 악몽에서 연유하는 것으로 안정없는 성장은 결국 빈껍데기라는 평범한 진리를 꿋꿋하게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분데스방크가 이처럼 이미 실질적인 유럽중앙은행의 역할을 어느정도 수행하고 있는 것과는 별도로 EC통합의 핵심인 통화동맹의 초석이 되는 유럽중앙은행(ECB)의 소재지가 어디로 될 것인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분데스방크의 소재지인 프랑크푸르트가 당초엔 가장 유력했었으나 세계 3위의 금융도시 런던이나 파리의 견제도 만만치 않다. 이 틈에서 룩셈부르크와 본이 최근 부상하고 있다.<베를린=유재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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