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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양대산맥’ … 한 여름밤 누가 웃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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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설-박’의 대결이다. ‘설-박’이란 한국 뮤지컬계 최고의 제작자로 꼽히는 두 사람, 바로 설도윤(49·설앤컴퍼니 대표·(左))씨와 박명성(45·신시뮤지컬컴퍼니 대표·(右))씨다. 둘이 각각 제작을 맡은 작품이 이번 주말 차례로 서울에서 개막한다. 6일부터 국립극장 무대에 오르는 ‘캣츠’ 해외 투어팀 공연은 설대표가 프로듀싱을 했고, 8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첫 선을 뵈는 ‘댄싱 섀도우’는 박대표가 7년여간 공을 들여 올리는 창작 뮤지컬이다. 라이선스 뮤지컬의 대표 주자이며, 한국 뮤지컬계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팽팽한 라이벌 관계를 이어온 두 사람이 이번엔 ‘투어 공연’과 ‘창작 뮤지컬’로 맞대결을 펼치게 됐다. 초반 기세는 4대 뮤지컬의 하나로, 인지도가 높은 ‘캣츠’가 앞서가는 형국. 그러나 박 대표는 “막상 ‘댄싱 섀도우’ 공연이 시작되면 달라질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인다.

 

# 실용 vs 뚝심
 
둘의 지나온 길은 판이하다. 설 대표가 기업적 마인드가 강하다면, 박 대표는 연극판에서 잔뼈가 굵었다. SBS 무용단장을 지냈던 설 대표는 삼성영상사업단을 거치며 본격적으로 뮤지컬 프로듀서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2001년 악극 ‘아리랑’의 실패로 휘청했지만 오히려 더 큰 모험을 감행, ‘오페라의 유령’ 라이선스 공연을 유치하며 한국 뮤지컬 산업화의 첫 장을 열었다. 세계 최고의 뮤지컬 작곡가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작품을 독점적으로 한국 무대에 올릴 수 있다는 건 설 대표의 최고 무기다.

87년 극단 신시 창단 멤버로 들어간 박 대표는 20년째 신시를 지키고 있다. 현재 서울연극협회장을 맡고 있는 만큼 그의 뮤지컬에는 “연극적 뿌리가 있다”란 평을 받는다. 99년 고(故) 김상열 선생에 이어 신시 대표를 맡아 대형 뮤지컬보다는 ‘렌트’ ‘유린타운’ ‘틱틱붐’ 등 중소규모 작품을 많이 올렸다. 2004년 ‘맘마미아’의 성공은 박 대표의 터닝 포인트. 설 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둘 간의 라이선스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게 됐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나 제작 방식도 대조적이다. 설 대표가 세련되고 합리적이며 실리 위주라면 박대표는 투박하지만 정이 많고 의리파다. 굳이 비교하면 강남(설도윤)과 강북(박명성)으로 구분된다. 설 대표는 제작 파트의 몸집을 최대한 줄여 사뿐히 움직이는 대신, 마케팅·기업 협찬 등 비즈니스 분야를 따로 떼내 동생(설도권)에게 경영을 맡기고 있다. 합병 등을 통해 기업 가치를 높이는 데도 능동적이다. 전통적 관습에 젖어 있는 공연계가 그를 “예술보단 지나치게 돈벌이에만 집착한다”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 대표는 명분을 중시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을 하는게 프로듀서가 아니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루어내야 한다”는 게 그의 모토다. 그만큼 추진력이 있고 강력한 리더쉽을 발휘한다.

반면 “막말로-”란 표현을 자주하는 것처럼 말투는 직설적이며 거침이 없다. 좋고 싫음이 분명하다는 점은 그의 장점이자 동시에 제작자로서 약점이다. 배우와 스태프도 대부분 하던 사람들과 계속 한다. 반복되는 작업 속에 작품의 밀도를 높일 순 있으나 “자기 사람만 감싸 안은 채 폐쇄적이다”는 지적은 박 대표를 따라 다니는 불편한 꼬리표다.  

# 창작 뮤지컬에서 진검승부
 
‘캣츠’ 월드 투어 공연에서 설 대표는 단순한 수입업자가 아니다. 첫 기획 단계부터 영국 제작사인 RUG와 협의하고, 호주까지 날아가 배우를 뽑는 등 그의 작업 방식과 시선은 이미 해외를 향해 있다.

제작 방식의 글로벌화는 박 대표도 마찬가지다. 그의 첫 창작 뮤지컬인 ‘댄싱 섀도우’는, 원작은 차범석 선생의 희곡 ‘산불’을 토대로 했지만 작곡(에릭 울프슨)·대본(아리엘 도르프만)·연출(폴 게링턴) 등 창작진은 대부분 해외 유명 인사로 구성됐다. 기획단계부터 작품이 올려지기까지 기간은 무려 7년. 이만큼 숙성시키며 작업을 한 경우는 한국 뮤지컬 역사상 처음이다. 제작비 40여억원중 80%를 박 대표는 외부 투자 없이 자기 자본으로 충당했다. 그야말로 ‘올인’이다. 박 대표의 승부사적 기질을 엿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설 대표 역시 창작 뮤지컬에 도전장을 내민다. 가수 조성모의 ‘아시나요’ 뮤직 비디오에서 모티브를 따온 ‘라이’(Lai·가제)를 내년 하반기에 올릴 예정이다.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하며 대본은 이만희씨가 썼다. 작곡은 ‘지킬 앤 하이드’로 유명한 미국의 프랭크 와일드 혼이 맡는다. 설 대표는 프로듀서를 맡고, 엠넷 미디어와 공동 제작한다. 설 대표의 포트폴리오 전략은 이 부분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라이선스에서 경합을 벌인 둘이 창작 뮤지컬에서도 또다시 맞붙을 수 밖에 없는 형세다. 한국뮤지컬협회 윤호진 회장은 “선의의 경쟁은 작품 질도 높이고, 시장도 크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평했다. 스타일과 전략은 다르나 둘의 지향점은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 과연 누가 승자가 될 지, 둘 간의 대결은 이미 2라운드를 시작했다.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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