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정 대표 의법처리 “부동”/YS·여권시각은 어떤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사회기강 확립 차원서 단호히 처리/정치적 해결때 검찰측 반발도 고려
일본에서 돌아온 정주영국민당대표는 대여태도를 한껏 부드럽게 보이려 했다. 비자금 5백억원을 갚겠다고 했고 이런 유화책이 김영삼차기대통령이나 검찰과의 간접 교감끝에 나온 듯이 풍겼다.
과연 그럴까. 김영삼차기대통령과 민자당,검찰은 정 대표의 기대대로 범법을 덮고 용서해 그가 대명천지에 정치를 계속하게 해 줄 것인가.
그러나 현재 드러난 여러가지 정황으로 봐서는 그렇지 않다. 김 차기대통령 주변과 여권의 입장은 단호하고 불변이다. 국민당 주변에서는 정 대표­김윤환의원의 일본 회동설이 돌고 있으나 「교감」의 흔적은 전혀 없다. 김 차기대통령 주변에서는 한결같이 「법대로 한다」는 합창밖에 들리지 않는다.
○…김 차기대통령을 향한 정 대표측의 접근노력은 부분적으로 확인된다. 지난달 출국전 정 대표는 「김 차기대통령을 뵙고 싶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전달해왔고 동생 정세영회장이 직접 찾아가 사죄하기도 했다.
또 아들 정몽준의원이 K·C의원 등 민주계중진을 접촉하려 부단히 애쓰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러나 이런 노력이 조금이나마 먹혀들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오히려 정 대표가 「이례적으로」 5백억원 상환을 발표하자 「정 대표 특유의 수법」이라며 시큰둥한 반응이다.
김 차기대통령과 민자당 지도부·검찰은 정 대표가 5백억원을 갚아도 이것이 정상참작에 불과하지 범법자체를 없애지는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의 기류로 보아선 「5백억원」과 상관없이 정 대표의 혐의가 인정된다면 기소는 명약관화하다.
김 차기대통령의 핵심측근들은 『기본적으로 검찰의 일이라는 생각에서 김 차기대통령이 정 대표문제에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면서 『「법대로」라는 원칙은 달라진게 없는 것 같다』고 전했다.
검찰에 정통한 당고위소식통은 『혐의가 증명된다면 현중비자금건은 중요 형사범죄여서 선거법위반보다 수십배 무겁다』고 말해 기소방침을 뚜렷이 암시했다.
김 차기대통령은 정 대표 문제에 대해 이미 오래전에 마음의 정리를 끝낸 것 같다고 측근들은 보고 있다. 한 핵심측근은 3일 『김 차기대통령이 기업하는 사람이 정치를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고있으며 이 부분의 신념은 오히려 더 확고해지고 있다』고 잘라 말했다.
김 차기대통령은 몇가지 이유로 정 대표 문제를 단호히 처리해야 한다고 보는 것 같다.
첫째,정 대표와 현대를 분리해야 하며 정 대표뿐 아니라 누구라도 기업돈으로 권력을 사겠다는 사람이 다시 나타날 수 없도록 국기차원의 치세가 확립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측근은 『정씨 일가가 현대를 맡고 있고 그 재력을 바탕으로 부자가 정치판을 흔드는 사태는 없어야 하며 그런 의미에서 정몽준의원의 범법사실도 적당히 넘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둘째는 법질서 차원이다. 사회기강을 곧추 세우겠다고 한 만큼 정 대표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정 대표가 제2야당의 대표고 대통령후보였지만 현대비자금은 너무 중요하므로 다른 판단의 여지가 별로 없다는 분위기다. 정 대표 문제를 흐지부지 해놓고는 대통령의 영이 설 수 없다는 생각이다.
김 차기대통령은 자신의 심복 서석재의원도 법에 따라 의원직을 상실했으므로 정 대표에 대한 입장이 떳떳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느끼고 있다.
셋째,사법부의 독립성 못지않게 검찰의 자존심도 중요한 변수다. 정치적 파장이 큰 사건에서 통치권자나 여권지도부의 정세판단이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지만 검찰의 「인격」이 중시돼야 한다는 판단이다.
현재 검찰내에는 신정부출범에 발맞춰 독립성을 키워야 한다는 「절박한」 인식이 싹트고 있는게 사실이다. 정치적 판단을 최소화하고 법대로 엄격히 사안을 처리하는 풍토가 자리잡아야 한다고 검찰은 주장하고 있다.
김 차기대통령과 민자당은 정 대표 문제와는 별도로 국민당의 진로를 가늠하면서 공존의 형태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고 있는듯 하다. 「당수의 운명」도 문제지만 당의 모습도 많이 달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정 대표 기소의 경우,의원직 상실여부와 그 시점에 따라 국민당의 모양새도 많이 달라질 것이란 얘기다.
현재 당주변에서는 신정부 취임이후 국민당이 많이 위축될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당고위관계자는 『지금 국민당의원의 상당수는 몰아치는 소나기를 피해 정 대표라는 우산밑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다. 날이 개면 우산밖으로 나와 각자 진로를 모색하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당직자들은 국민당을 뛰쳐나온 무소속 차화준(울산중)의 민자당 입당 움직임에 이어 몇건의 후속타가 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김진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