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섭네 '끝전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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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6세 미만 어린이의 외래 진료비를 50% 깎아주기로 약속했던 보건복지부가 4일 30%만 깎아준다고 말을 바꿨다. 두 달 반 전에 입법예고했던 건강보험법 시행령 개정안을 고쳐 6일 다시 입법예고하면서다. 돈 계산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덜컥 건강보험 혜택을 늘린다고 발표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복지부는 감기 같은 가벼운 병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에게 진료비를 지금보다 더 내게 하는 제도를 올해 초부터 검토했다. 일괄적으로 3000원씩 내던 것을 진료비의 30%를 내는 방식으로 바꾸는 것이다. 환자는 최대 1500원을 더 부담해야 한다. 제한된 재원 내에서 절실한 환자들에게 더 많은 건강보험 혜택을 주려면 경증 환자 부담을 늘릴 수밖에 없어서다. 이 제도는 다음달 시행된다.

복지부는 경증 환자가 진료비를 더 내면서 생기는 재정 절감액을 연간 2800억원으로 추산했다. 이 중 2500억원은 6세 미만 어린이를 위해, 300억원은 중증 환자를 위해 쓰기로 했다.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생겼다. 경증 환자가 3000원씩 정액으로 낼 때는 문제가 안 됐던 100원 미만의 잔돈이 골칫거리였다. 총진료비의 30%를 내다 보면 3210원, 3470원처럼 10원짜리나 50원짜리 동전을 내거나 거슬러 줘야 하는 일이 생긴다. 병원도 환자도 모두 불편해질 것이 뻔했다.

복지부는 이에 따라 100원 미만의 돈은 건강보험에서 부담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연간 500억원에 달했다. 이 비용을 감안하면 경증 환자 부담을 늘리면서 생기는 여윳돈은 2800억원이 아니라 2300억원이 된다. 복지부는 이런 사정을 알고도 4월 기존 방안대로 6세 미만 아동 진료비 경감 대책을 입법예고했다.

나라 곳간을 관리하는 기획예산처가 복지부에 제동을 걸었다. 수입보다 지출을 더 크게 잡아 놓은 복지부는 예산처 주장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부처 협의 과정에서 예산처는 "건강보험 혜택을 늘리는 것은 좋지만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 진료비를 자꾸 경감해 주면 도덕적 해이가 생길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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